이승선 교수 |
며칠 전 두 언론이 이른바 '○○노조 술판'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했다. 지난 달 말 서울중앙지법이 두 언론의 정정보도와 위자료 지급을 판결했다. 2022년 6월 여러 언론이 "○○ 노조가 본사를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흐릿하게 찍힌 농성장 사진도 게재되었다. 노조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조정 등을 신청했다. 여러 언론이 기사를 정정했다. 이번에 정정보도 판결을 선고받은 언론은 언중위의 정정보도 조정을 거부해 재판으로 이어졌었다. 독자가 제공했다는 애초 기사 사진에도 커피 캔이나 음료병, 종이컵, 과자 등이 있었을 뿐, 술을 마시고 있다는 흔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노조 술판' 보도를 둘러싼 언중위 조정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기사를 삭제할 수는 있어도 정정보도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언론분쟁 조정과정에서 왕왕 나타나는 현상이다. 명백하게 잘못된 보도의 피해자가 정정보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경우 언론은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을 하는 대신 아예 '기사 삭제'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기사의 흔적을 없애버릴지언정, 독자들에게 정직하고 정확하게 정정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이 제공한 허위 뉴스 정보를 섭취한 독자는 정정한 보도로 치유되지 않고 버려져도 그만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3년에 실시한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전년에 비해 종이신문과 잡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체에서 뉴스 이용률이 하락했다. TV뉴스와 포털 뉴스 이용률이 크게 하락했는데, 특히 20대와 30대의 이용률 하락이 심했다. 언론과 언론인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뉴스에 대한 신뢰도 하락 역시 모든 연령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하나 눈여겨 볼 지점이 있다. 모든 언론의 신뢰도가 하락한 것은 아니다. 한국 언론의 역할 수행 중, 가장 부정적 평가가 높았던 것은 언론이 '사회적 약자 대변'이나 '정부, 공인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MBC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 달라진 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MBC가 이른바 '바리든-날리면' 보도 후 대통령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갖가지 심의제재를 받고 있으며, 정치권력자나 권력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들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당해 왔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지역MBC도 취재보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원은 대구시가 수개월 이어져 온 대구MBC의 취재보도를 거부하고 방해하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 최근 원주시는 시장의 인사정책을 비판한 원주MBC에 대해 1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경과는 더 지켜볼 일이지만, 다수의 일반 국민도 이러한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2023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예년 조사에 비해 거의 갑절이나 커졌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부문 22.0%,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21.4%였다. 2021년 조사에서 MBC는 이 부문 각각 12.4%, 11.5%를 얻었었다. 언론수용자 조사의 경우 조사대상자가 매번 5000여 명에 이르므로, MBC에 대한 조사결과를 혹여라도 시민들의 이념적 편향의 문제로 폄하하거나 공격할 사안은 아니다. 2023년에 실시된 디지털 뉴스 리포트, 시사IN, 시사저널 일반인과 전문가 조사에서도 MBC는 언론 매체 중 가장 높은 신뢰를 얻었다. 이전과 달라진 시민,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MBC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시민들은 무엇보다 MBC가 정치권력과 정치인, 공인, 공적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 등 언론본연의 책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뉴스 이용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한편으로 시민들은 언론이 정치권력과 공적인물, 기업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언론관을 내심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제아무리 디지털, AI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진실을 보도하는 정직한 언론, 정확한 언론, 용기 있는 언론이 살아 남는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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