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성 연극평론가, 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올해 대전에서 처음 관극한 작품이 '알고리즘'(이정수 작, 최한솔 연출/소극장 고도/2024.2.1~2.4)이었다. 다소 거칠고 날것처럼 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참신하게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이기도 했다. 작가는 'Algorithm'과 'Algorism'으로 차이나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알고리즘'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내면서 연극은 '알고리즘주의'에 대한 정보데이터의 '편향성'을 간명한 메시지로 전달해내고 있다. "으레 욕망해야지, 그럼! 네가 남들 하는 것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 따르잖아. 아니야? 이것도 마찬가지야. 너도 인간이잖아. 우리가 원하는 것에 따르면 돼.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사이) 닥치고 따르면 돼."라고 말하는 극중 진모의 대사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려지는 사람들과 사회적 편향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주한 연극을 바라보면서, 늘 '우리의 삶'에 대한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세계의 수수관계에 대한 문답에서 과연 내 사고와 행위의 도식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다시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대상의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어긋난 것은 아닌지, 정작 원래 가졌던 지순한 삶의 방향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역마의 걸음을 되새김하면서, 번지레한 말이든 차림이든 왜 길을 나섰는지 돌봐야할 듯하다. 온전한 세계를 다룬 연극은 본 적이 없다. 틀어지고 금이 간 세계든 인간이든, 요동치는 이 무대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매번 질문한다.
봄 되기 전에 애써 묶은 겨울호 '한국희곡'이 도착했다. 책 표지 뒤편이 의미심장하다. "해가 뜨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니 운수 좋은 날도 끝나."라는 신성우 작가의 '운수 좋은 날' 대사가 귀에 박힌다. 선거판 안간힘들이 저마다 통합을 말하면서 사분오열 분열의 양상이 참 연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거리 건널목에서 받침대 올라 꾸벅꾸벅 인사를 하는 그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바뀔 수 있다'는 말보다, '바꿀 수 있다'는 자기의지적인 봄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인간은 욕망을 위해 산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으나, 남들의 욕망을 베끼기보다 나의 사랑부터 곱씹어 봐야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식지 않고 익어가는 게 사랑이어야 할 텐데, 너무 쉽게 처음 품었던 그 사랑의 마음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볕 좋은 날, 빨래를 널다가 잠시 앉아 창을 바라본다. 새 한 마리 앙상한 나뭇가지에 잠시 발을 걸더니 문득 나와 눈을 마주친다. 부끄러운 듯 금세 가지를 출렁이며 새가 퍼덕 날아간다. 저 새도 나와 그 찰나 인연이 있구나. 덕분에 오후의 여백에 서정이 깃든다. 이제 곧 삼월이다. 제33회 대전연극제(2.25~2.29.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가 곧 시작된다. 극단 홍시의 '사문난적'(2.25), 극단 라일락의 '백파'(2.27), 국제연극연구소 H.U.E.의 '도장찍으세요'(2.29) 등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그 마중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연극을 바라봐야겠으며, 그 연극이 그토록 사랑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찬찬히 장을 넘겨봐야겠다. /조훈성 연극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