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대전에 만든 동굴 조사한 연구자들 "대전을 요새화"

  • 사회/교육
  • 법원/검찰

일제가 대전에 만든 동굴 조사한 연구자들 "대전을 요새화"

16일 정혜경 연구위원 등 5명 보문산 탐사
"입구 좁은 호동동굴, 진짜 동굴은 바로 옆에"
아쿠아리움 관찰하고 일제 조성방식과 유사
"생존 목격자 찾아 증언 수집해야" 제안도

  • 승인 2024-02-18 18:15
  • 수정 2024-02-20 10:07
  • 신문게재 2024-02-19 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IMG_5944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연구자들이 16일 대전 신상동에서 발견된 동굴을 조사하고 있다. 굴착 후 벽면을 긁어 마감한 국내에선 드문 사례로 분석됐다.  (사진=임병안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연구자들이 대전을 찾아 보문산과 동구 신상동에서 발견된 동굴을 7시간 동안 탐사했다. 신상동에서는 동굴 1개를 추가로 발견했고, 조성 형태와 위치를 봤을때 군사용 진지와 지휘사무실, 군수자재 보관창고 등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대전에서 지난해부터 잇달아 발견된 일제강점기 동굴을 조사하기 위해 16일 연구자들이 중구 보문산과 동구 신상동을 찾아왔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과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한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선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 허광무 한일민족문제학회장, 김규혁 인천시 부평문화원 문화사업부 과장 일행은 이날 중도일보가 보도한 동굴을 탐사했다. 이들은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에서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을 조사하고 식민지배 강제성을 규명하는 연구자들이다. 한상헌 대전세종연구원 대전학연구센터장 등이 연구자들의 대전 방문을 맞이했다. 중도일보는 2023년 8월 대전 도솔산과 보문산에서 동굴을 발견해 1차 보도한 이후 중구 석교·부사·호동과 동구 신상동에서 추가로 7기의 동굴을 찾았고 일제강점기 동굴 조성에 근로 동원된 박영규(96) 옹의 경험담을 보도했다.

IMG_5958_edited
대전 신상동에서 새롭게 발견된 일제강점기 추정 동굴 실내 모습. 깊이 16m 폭 2.8m 규모다.  (사진=임병안 기자)
▲"호동동굴 더 있을 것"

5명의 연구자 일행은 중구 호동 동굴을 먼저 탐사해 벽면에 남은 화약구멍과 받침목 흔적, 동굴의 크기와 주변의 지형을 조사했다. 조건 연구위원은 "호동동굴은 안쪽 규모에 비해 입구가 좁은 형태인데 주 출입구는 아니었을 것으로, 바로 옆에 완전한 형태의 출입구를 갖춘 더 큰 동굴이 하나 더 있을 것으로 보이고, 대전을 요새화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일제는 한반도에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군사적 목적으로 동굴을 여러 곳에 조성했는데 대전에도 그러한 시설이 있다는 게 최근에 알려지게 됐다. 근로자를 강제동원해 조성했는데 바닥에 레일을 설치하고 운반차가 입구를 오가는 방식으로 조성한 다른 지역 사례를 봤을 때 입구 좁은 호동 동굴 옆에 넓은 입구의 동굴이 붙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장 조사에서도 호동 동굴은 공사중단 직전까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오른쪽으로 길을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데, 오른쪽에 동굴 입구가 하나 더 있었으나 흙이 무너져 가려졌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깊이 16m 동굴 추가발견

이날 탐사에서 연구자들의 주목을 끈 것은 대전아쿠아리움과 동구 신상동의 동굴이었다. 아쿠아리움의 협조를 얻어 동굴 내실을 탐사해 일제 총독부 관료가 남긴 기록처럼 회칠된 벽면을 확인했다. 또 바닥에 배수로가 있고 합판을 떼어낸 천장 마감 형태를 보고 일제 동굴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봤다. 다만, 수족관으로 쓰이기 전에 우리군이 이곳을 사용할 때 회칠하거나 천장에 마감했던 것은 아닐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신상동에서는 앞서 중도일보가 보도한 동굴 외에 1개를 더 찾았고, 입구 무너진 동굴이 1개 더 있다는 주민 증언까지 수집했다. 새롭게 확인한 동굴은 깊이 16m에 폭 2.8m, 높이 2.4m로 크고, 물방울 맺힘도 없이 건조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허광무 학회장은 "이러한 양식의 동굴은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형태인데 굴착을 마친 뒤 어떤 도구로 벽면을 긁어 고르게 마감한 형태"라며 "습도가 낮게 유지되는 동굴은 일본에서도 총과 차량 제작에 필요한 군수자재 창고로 사용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동굴 조성 때 불을 밝혔을 것으로 보이는 옴팍한 고임이 발견됐고, 호동 화약고 추정 잔해는 크기가 작고 위치를 봤을 때 화약고가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정혜경 연구위원은 "일제가 대전에 어떤 목적으로 보문산에 동굴을 만들었는지 파악하려면 생존자와 목격자를 찾아 증언을 모아야 한다"라며 "일제가 용산 사령부를 대전으로 옮겨 결사항전을 벌이려 했다는 연구 주제에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IMG_5933_edited
대전을 찾은 일제 강제동원 연구자들이 중구 부사동에서 일제강점기 사방공사 표지석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대한민국 지방 혁신 '대전충남특별시'
  2. 금강환경청, 자연 복원 현장서 생태체험 참여자 모집
  3. "방심하면 다쳐" 봄철부터 산악사고 증가… 대전서 5년간 구조건수만 829건
  4. [썰] 군기 잡는 박정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5. 기후정책 질의에 1명만 답…대전 4·2 보궐선거 후보 2명은 '무심'
  1. 보은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국가배상 판결 나와
  2. 안전성평가연구소 '국가독성과학연구소'로 새출발… 기관 정체성·비전 재정립
  3. 지명실 여사, 충남대에 3억원 장학금 기부 약속
  4. 재밌고 친근하게 대전교육 소식 알린다… 홍보지원단 '홍당무' 발대
  5. '선배 교사의 노하우 전수' 대전초등수석교사회 인턴교사 역량강화 연수

헤드라인 뉴스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충청 4·2 재·보궐 결전의 날… 아산·당진·대전유성 결과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정국에서 펼쳐지는 첫 선거인 4·2 재·보궐 선거 날이 밝았다. 충청에선 충남 아산시장과 충남(당진2)·대전(유성2) 광역의원을 뽑아 '미니 지선'으로 불리는 가운데 탄핵정국 속 지역민들의 바닥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재·보궐에는 충남 아산시장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5명, 충남·대전 등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 교육감(부산) 1명 등 23명을 선출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놓고 여야 간 진영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번 재·보궐 선거전은 탄핵 이슈가 주를 이뤘다. 재·보궐을 앞..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전원일치 의견’이면 이유 요지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과 관련,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전원일치’이면 이유의 요지를 먼저 설명한 후 마지막에 ‘주문’을 낭독한다. 헌법재판소의 실무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 명시된 선고 절차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주문 먼저 읽은 후에 다수와 소수 의견을 설명하는 게 관례지만, 선고 순서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어 바뀔 수 있다. 선고 기일을 4일로 지정하면서 평결 내용의 보안을 위해 선고 전날인 3일 오후 또는 선고 당일 최종 평결, 즉 주문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 평결은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이 의견을..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 공식 첫 걸음…대전지역 금융 기반 기대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이하 소호은행)이 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국 최초의 소상공인 전문은행 역할을 지향하는 소호은행은 향후 대전에 본사를 둔 채 충청권 지방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소호은행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서비스 계획을 발표했다.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KCD) 대표는 "대한민국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소상공인, 대한민국 경제 활동 인구의 4분의 1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재·보궐선거 개표소 설치

  • 3색의 봄 3색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