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연구자들이 16일 대전 신상동에서 발견된 동굴을 조사하고 있다. 굴착 후 벽면을 긁어 마감한 국내에선 드문 사례로 분석됐다. (사진=임병안 기자) |
대전에서 지난해부터 잇달아 발견된 일제강점기 동굴을 조사하기 위해 16일 연구자들이 중구 보문산과 동구 신상동을 찾아왔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과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한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선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 허광무 한일민족문제학회장, 김규혁 인천시 부평문화원 문화사업부 과장 일행은 이날 중도일보가 보도한 동굴을 탐사했다. 이들은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에서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을 조사하고 식민지배 강제성을 규명하는 연구자들이다. 한상헌 대전세종연구원 대전학연구센터장 등이 연구자들의 대전 방문을 맞이했다. 중도일보는 2023년 8월 대전 도솔산과 보문산에서 동굴을 발견해 1차 보도한 이후 중구 석교·부사·호동과 동구 신상동에서 추가로 7기의 동굴을 찾았고 일제강점기 동굴 조성에 근로 동원된 박영규(96) 옹의 경험담을 보도했다.
대전 신상동에서 새롭게 발견된 일제강점기 추정 동굴 실내 모습. 깊이 16m 폭 2.8m 규모다. (사진=임병안 기자) |
5명의 연구자 일행은 중구 호동 동굴을 먼저 탐사해 벽면에 남은 화약구멍과 받침목 흔적, 동굴의 크기와 주변의 지형을 조사했다. 조건 연구위원은 "호동동굴은 안쪽 규모에 비해 입구가 좁은 형태인데 주 출입구는 아니었을 것으로, 바로 옆에 완전한 형태의 출입구를 갖춘 더 큰 동굴이 하나 더 있을 것으로 보이고, 대전을 요새화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일제는 한반도에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군사적 목적으로 동굴을 여러 곳에 조성했는데 대전에도 그러한 시설이 있다는 게 최근에 알려지게 됐다. 근로자를 강제동원해 조성했는데 바닥에 레일을 설치하고 운반차가 입구를 오가는 방식으로 조성한 다른 지역 사례를 봤을 때 입구 좁은 호동 동굴 옆에 넓은 입구의 동굴이 붙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장 조사에서도 호동 동굴은 공사중단 직전까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오른쪽으로 길을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데, 오른쪽에 동굴 입구가 하나 더 있었으나 흙이 무너져 가려졌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깊이 16m 동굴 추가발견
이날 탐사에서 연구자들의 주목을 끈 것은 대전아쿠아리움과 동구 신상동의 동굴이었다. 아쿠아리움의 협조를 얻어 동굴 내실을 탐사해 일제 총독부 관료가 남긴 기록처럼 회칠된 벽면을 확인했다. 또 바닥에 배수로가 있고 합판을 떼어낸 천장 마감 형태를 보고 일제 동굴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봤다. 다만, 수족관으로 쓰이기 전에 우리군이 이곳을 사용할 때 회칠하거나 천장에 마감했던 것은 아닐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신상동에서는 앞서 중도일보가 보도한 동굴 외에 1개를 더 찾았고, 입구 무너진 동굴이 1개 더 있다는 주민 증언까지 수집했다. 새롭게 확인한 동굴은 깊이 16m에 폭 2.8m, 높이 2.4m로 크고, 물방울 맺힘도 없이 건조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허광무 학회장은 "이러한 양식의 동굴은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형태인데 굴착을 마친 뒤 어떤 도구로 벽면을 긁어 고르게 마감한 형태"라며 "습도가 낮게 유지되는 동굴은 일본에서도 총과 차량 제작에 필요한 군수자재 창고로 사용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동굴 조성 때 불을 밝혔을 것으로 보이는 옴팍한 고임이 발견됐고, 호동 화약고 추정 잔해는 크기가 작고 위치를 봤을 때 화약고가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정혜경 연구위원은 "일제가 대전에 어떤 목적으로 보문산에 동굴을 만들었는지 파악하려면 생존자와 목격자를 찾아 증언을 모아야 한다"라며 "일제가 용산 사령부를 대전으로 옮겨 결사항전을 벌이려 했다는 연구 주제에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대전을 찾은 일제 강제동원 연구자들이 중구 부사동에서 일제강점기 사방공사 표지석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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