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
도시국가 폴리스(polis)가 등장했고 폴리스는 지금의 메트로 폴리스라 부르는 대도시의 기원이 된다. 아고라에서 시민들은 제멋에 맞게 나름의 이야기를 소재로 토론을 했고 자연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린 공동의 장소로 탄생하였다. 아고라의 본래의 의미는 사람들의 모임 의미를 지닌 집결장소를 뜻한다. 이런 배경으로 시작된 아고라는 서서히 여러 종류의 집합 장소로 확대되기 시작해서 언제라고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차 그 모습이 변모되었다. 당시 정치와 군대의 모집 집결장소도 이곳이었고 또한 필요한 물건을 교환 판매하는 오늘날의 시장 같은 행위도 여기서 벌어졌다. 한마디로 쉽게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공간은 다목적으로 쓰임새가 많아 정치가들의 유세장소로 때론 운동경기 같은 경기장으로 때론 학예가 발표되는 문화공간으로 무한히 변모해 갔으며 대규모 군중의 집합체인 광장도 여기서 출발하여 여러 모습의 오늘날 도시구조의 활력을 주는 주요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동서양 문화의 교차로인 천년 도시 튀르키에의 콘스탄티노풀은 동로마제국이자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지금의 이스탄불이며 이곳엔 오래된 시민들의 아고라인 바자르가 있다. 천년 속의 도시이며 문명의 교차로로서 이 도시의 면모는 여러 표징으로 헤아리게 되며 대부분은 불루모스크와 성당으로 시작해 모스크가 된 하기아소피아와 같은 엄청난 기념비에 주력하지만 시민들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 동요는 바로 이곳 시장 안에 들어있는 천년의 왕국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의 술탄이 주재한 흔적에서 동서양의 격정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느낀다. 그란드 바자르시장은 이스탄불의 구도심에 있으며 21개의 입구를 지닌 시장 안에는 보기에도 묵직한 금 공예품들이 가득해서 부를 상징했던 천 년의 시간과 도시를 느낄 수 있다.
보기 만해도 배가 부른 전통시장의 모습, 이 시장의 위상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네 삶의 중심이 되지만 실상은 어두운 면도 없지 않아 좀 안타깝기도 하다. 최근 화재로 불행을 겪은 우리의 시장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이 커진다. 그 그늘의 핵심은 바로 물리적 시설의 상대적 열세에 있고 단위상점의 위상이 약하기 때문이라 본다. 여러 면에서 열세에 있는 우리 시장에 비해 상점과 상품의 권위를 존중하는 유럽의 나라들에서 거리의 상점은 오히려 대형의 기세를 밀어내고 있다. 비둘기 날리는 베니스의 산마르코광장은 다양한 먹거리와 명품가게들이 공존하는 열린 시장이다. 또한 로마의 스페인 계단 아래 콘도티거리는 내로라하는 명품가게들이 즐비한데 비해 밀라노의 최고 백화점인 리나첸토 안에서 명품가게를 찾을 수는 없다. 여기서 대형 백화점은 그냥 일반 생활용품들로 집합된 시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두오모 성당 앞의 아케이드 빅토리오 엠마뉴엘2세 갈레리아에서는 고급스럽고 다양한 것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폴레옹 시절에 만든 밀라노 두오모와 그 앞의 거리는 그야말로 거리 이상의 도시의 응접실 같은 곳이기도 하다. 도시가 보이는 시장은 거리의 모습이고 곧 그 거리는 도시의 응접실 같은 곳으로 도시의 어제와 오늘이 열리는 곳이 된다. 우리의 시장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오래 기억되고 성장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을지 또한 도시는 어떻게 역사와 집합의 장소로 기억하고 도시의 응접실과 같은 장소를 어떻게 소유해야 할지 그 고유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질의와 대안을 통해 새로운 변화와 인식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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