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남편은 그 집은 아니지만 같은 터에 있던 옛날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지이기도 한데 남편 뿐 아니라 시누이나 시동생 모두 현재의 집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에게 고향집인 셈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시부모님이 결혼하시고 살림을 시작한 곳에서 평생 사셨고 한번도 이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터를 잡고 신혼살림을 시작한 때가 1954년이니까 70년 동안 한곳에서 살고 계신 셈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같은 터에서 처음에는 판자집으로, 그 다음에는 블록집으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빨간 벽돌집으로 다시 지으면서 평생 한 곳에서 살고 계시는 것이다. 근 70여년을 이웃으로 살고 있는 집도 두세집 있어서 요즈음의 도시살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지은지 40년이 되었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해야 재산을 불릴 수 있다고 하는 요즈음의 세태와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주변머리가 없는 모습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남편이 이재에 매우 어둡고 집으로 재산을 늘리는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결벽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아마 그런 집안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친척이 없으니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이 지내는 편이라 형제들과 나가서 영화도 보고 나들이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 설에는 특별하게 고궁에 가본지도 오래 되었으니 고궁 나들이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참에 잘되었다 싶어서 덕수궁으로 가자고 제안하여 손주를 데리고 시누이 내외와 덕수궁으로 향했다.
덕수궁은 시댁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특히 덕수궁 안에 있는 현대 미술관에서 장욱진 화백의 전시회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어서 가보고 싶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직 국전이 개최되던 대학시절에 몇 차례 가본 오랜 기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시회의 제목은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으로 되어 있다. 장욱진 화백의 초기작품부터 말년의 작품에 이르는 대규모 전시가 마련되어 한자리에서 한 화가의 전 생애에 걸친 그림을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장욱진의 그림을 4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전시를 소개하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어보면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주된 소재로 까치와 나무,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관심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서 '집'에 관심이 많다. 그의 집이 흥미로운 것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 대부분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강아지, 까치, 해와 달이 함께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가족을 제목으로 한 그림들은 예외없이 집과 함께 가족들이 그려져 있다, 그에게 집은 가족이 안식하는 곳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기도 하고, 거친 세상에서 가족을 보호하며 자연 속에 공존이 이루어지는 평화의 보금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그리는 집에 가족 뿐 아니라 강아지, 까치 등이 단골로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 해와 달, 나무가 함께 공존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출발이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년전 현대화랑에서 장욱진 30주기 회고전을 열면서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으로 전시회의 제목을 단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곳에서 70년을 살아온 시어머님에게 집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서 새가 날아들고, 강아지도 있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것처럼 어머님에게 집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와 고양이가 함께 살며 가족이 태어나고, 가족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곳일 것이다. 그래서 집은 가족 개개인의 인생이 되고 자연이 되고 우주가 되는 그런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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