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 배재대 총장 |
인간사회에서 협력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최근의 연구는 로버트 엑셀로드라는 정치학자의 저작 '이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협력의 진화'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은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간파한 바 있으며, 현대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기적이라는 말이 꼭 악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인간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충돌할 때 후자를 우선한다는 것이다.
엑셀로드가 던지는 기본 질문은 간단하다. 이처럼 이기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할 수 있게 됐을까? 그는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 소위 죄수의 딜레마 게임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내가 배반하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 물론 상대방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연히 협력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된다. 따라서 이 게임을 한 번만 한다면, 이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엑셀로드가 착안한 것은 인간들은 이 게임을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무한 반복한다고 가정하면, (따라서 사람들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면) 협력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서로가 배반을 선택해 협력하지 못하는 집단에 비해 서로 협력을 하는 집단에게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득과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인간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협력을 못 하는 집단은 서서히 소멸돼 갔고, 협력을 잘 하는 집단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협력을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구분된다. 어떤 사람이 협력을 잘 하는가? 첫째, 일단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 사이보다 계속 만나는 사람들(가족, 친구, 동료 등) 사이에서 협력이 용이한 것은 당연하다. 둘째, 상대방도 협력적일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비협력적인 인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그 사람과의 접촉이나 협력을 피할 것이다. 내가 협력적으로 나간다 해도 상대방이 배반한다면, 나에게는 손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소위 평판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의 목표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인성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많은 기업인에 따르면, 전공 지식은 기업에 들어와서 배우면 되기 때문에 신입 사원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올바른 인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성 교육의 핵심은 무조건 착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남에게 양보하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거나 자기 이익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인간 사회에서 존경받지도 못하고 어떤 조직에서도 생존하기 어렵다.
인성 교육의 핵심은 사회에서 남들과 잘 어울리고, 갈등을 잘 해결하고, 잘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바로 사회성과 사회적 기술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성 교육은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어디에서도 다 필요하다.
비단 개인 사이에서만 협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직과 기관, 국가들 사이에서도 협력은 필수적이다. 특히 지방이 소멸될 위기에 처하고, 지방 대학들이 생존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각 지역의 대학 간의 협력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대학들과 지방정부, 각종 단체 및 기관, 연구소, 기업 간의 폭넓은 연대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협력하지 못하는 인간 집단들이 진화 과정에서 소멸됐듯이, 협력에 실패하는 대학들과 지역들은 그만큼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김욱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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