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사상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과 조상을 숭배하는 (崇祖)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땅, 조상에게 항상 감사하며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가 담긴 효 사상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리는 세계적으로 존중받던 우리가 전쟁과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등을 거치면서 예전에 효라고 부르던 가치가 많이 퇴색되고 희박해 땅에 떨어짐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와 씁쓸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낳아 가르치며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기울였던 정성과 사랑, 그리고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은 사고와 노력의 부재가 이루어 낸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천이 녹록지 않은 여건과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인륜의 덕목인 효(孝)는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생존해 계신 부모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선친이나 선조 등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효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며 인류의 중요한 덕목이자 가치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생각하는 정신적인 효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봉양하는 물질적인 효로 상호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부부간의 참사랑은 물론 남다른 자녀교육을 중시한 한 예로 조선 시대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년)은 젊은 시절 접했던 천주교로 인해 전남 강진 다산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하는 가운데 인편으로 글을 보내 자녀들을 가르쳤던 고귀한 교육 정신은 오늘날 시사하는바 매우 큰데다 하피첩(예복의 하나인 붉은 치마로 만든 서첩)이 대표적인 예다.
정약용의 처가 유배 기간에 남편이 보고 싶어 치마를 보냈는데 치마에 아들에게 교훈이 되는 글을 적은 서첩이 1950년 전쟁 통에 분실되어 고심하던 중 2005년 경기도 수원시 어느 모텔 주인이 건물을 고치려고 실내에 있던 폐지를 마당에 내놓았다.
때마침 폐품 모으는 지나가던 할머니가 폐지를 달라고 하자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이상한 책자에 눈이 가 책자와 폐지를 교환한 뒤 범상치 않은 책자를 혹시나 해서 KBS 진풍명품에 내놓아 감정을 의뢰한바 감정위원인 김영복은 책을 본 순간 눈을 의심하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감정가 1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다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천만 원에 팔려 2015년 국립민속박물관에 보물 제1683호로 지정 보관 중이기 때문이다.
경기 남양주시는 매년 5월을 맞아 다산 유적지에서 전통문화와 정약용 선생의 애민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다례, 서예, 산대나례 3色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후 정약용은 오랜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마을로 돌아온 후로 5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기고 헌신하여 많은 후세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하피첩의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는 애틋한 부부 사랑과 부모가 자식에 대한 남다른 헌신과 교육열이 지대함을 알 수 있는 방증(傍證)으로 하피첩을 간과하지 않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길식 /대전시효지도사협회 이사
이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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