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모닥불 피워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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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모닥불 피워놓고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4-02-08 09:2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며칠 전, 지인에게서 점심 초대를 받았다. <한국가곡연주회> 멤버로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간단히 칼국수나 한 그릇 먹고 올 양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녀는 친구와 동행으로 나를 보자 대뜸 차에 타라고 하더니, 유성 IC를 통과해서 고속도로를 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 어디로 가는데요? 가까운 곳에서 칼국수 먹지요."하지만 그녀는 태연히 말했다. "우리 처음으로 식사 같이하는데요, 좋은 곳에 가서 먹어요."

차창 밖은 때 이른 화창한 날씨가 봄이 온 듯 마음을 설레게 했다. 차가 달릴수록 차츰 자연과 동화되어선지 그녀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차는 남대전 IC를 통과, 전원 풍경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Y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아, 그곳은 나도 좋아하는 곳으로 코로나 전에 자주 갔던 곳이다. 옛 연인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이 타고 있고 그 둘레에 양식, 한식, 찻집 등이 있다.

마당 한가운데서 불길을 솟구치며 타는 장작불을 보고 있으니 지난 몇 년 동안이 어제로 함축되어 상념에 잠기었다. 나는 불을 좋아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님 댁에 갔을 때 오빠를 따라 논둑에서 쥐불놀이하던 때부터 불을 좋아했다. 아니, 할머님 댁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내가 해보겠다고 우겨대다가 불이 날 뻔한 적도 있긴 하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불을 피우고 있으면 잠시 서서 불구경할 정도이다.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인터넷 사전(나무위키(namu.wiki))에 불에 대해 쓰여 있다. '불'은 아주 위험하면서도 아주 아름답다. 불 자체가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불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다./ 어려움이나 뜨거움, 강렬함, 괴로움, 매운맛 등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도 사용된다. 불같은 호통, 불주사, 불수능, 불장난, 불닭 등….



불이라는 것이 인류의 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큰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에 /불 그 자체를 신 혹은 신의 상징으로 여기며 신성시하는 풍습 또한 많이 있었으며, /문화권을 막론하고 불의 신은 격이 높은 신으로 묘사되어 왔다.-나무위키(namu.wiki)인용.

우리는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모닥불을 보기로 하고 한식당으로 갔다. 한식당 내에는 벽난로가 타고 있었다. 벽난로 또한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겨울에는 찻집을 가도 대전 근교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갔었다. 장작불이 타는 곳은 어디든 즐겨 찾아다녔다. 불가마도 단골이었는데 어쩌면 아직 건강한 건 불가마 덕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엄동설한 천지가 꽁꽁 언 길을 달려서 대전 근교 한적한 시골 장작불이 타는 불가마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었다.

모닥불 중에 가장 잊혀 지지 않은 것은 해변에서 장작더미를 높이 쌓아놓고 캠프파이어를 했던 때였다. <클래식 음악감상>모임에서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2박3일 일정으로 수련회를 갔다. 매번 회원 가족 등 40~50여 명이 갔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곳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 보면 모기한테 물리곤 했는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어선지 고생하면서도 매번 즐겁게 갔던 것 같다. 여름 수련회 때는 마지막 날 해변에 장작더미를 높이 쌓아놓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3일간의 수련회를 장식했었다.

한번은 숙소 마당에 6인용 탁자가 군데군데 있어서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몇 명은 기타를 치고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토요일 밤에(김세환 노래)를 특히 많이 불렀다. 한참 분위기가 익어갈 즈음 저만치에 앉아있던 회원이 독창을 하겠다며 일어섰는데, 그만 그가 앉아있던 6인용 의자가 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그곳 탁자 위 휴대용 버너에는 찌개가 끓고 있었는데, 그 순간 버너 불도 꺼졌다. 천지가 암흑이 되었다. 모닥불도 한밤중으로 다 타서 꺼진 상태였다. 그동안 노랫소리에 묻혀 안 들렸던 파도 소리만 철썩철썩 애절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때 그 적막감이란 공포 그 자체였다. 다행히 그 탁자에 앉았던 회원 중 찌개국물에 덴 상처가 깊지 않아서 준비해 간 약품으로 응급조치가 가능했다.

또 한 번은 바닷가 주택을 얻어서 마당에 대형 텐트를 쳐놓았다. 그때는 하필 감기가 들어서 망설이다 갔기에 몸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았다. 아무튼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텐트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일어나니 나랑 나란히 누웠던 회원은 거꾸로 자고 있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옆 텐트에 있는 남자 회원 몇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닥불은 활활 타고 있었다. 왜 잠도 안 자냐며 퉁명스럽게 말했더니, 오히려 그쪽에서 더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기 누구예요? 코를 너무 골아서 잠을 못 자고 나왔어요. 네? 저는 못 들었는데요? 어? 그럼, 본인이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옆에 자던 동행도 내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거꾸로 잔 거였다. 다만 내가 감기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말없이 본인이 거꾸로 잔거였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모닥불 탓만 했다. 모닥불 때문에 밤새 안자는 줄 알고 퉁명스럽게 말을 했었다. 나에게 모닥불은 그렇게 사연이 많았다.

며칠 전 지인과 같이 갔던 Y 레스토랑은 그녀와 함께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그날은 서로 바빠서 급히 왔지만, 이번에 가면 마당에서 타고 있는, 모닥불이 보이는 그곳 찻집 2층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싶다. 우리들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나누고 싶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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