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호 문학평론가 |
한국 서정시의 커다란 흐름을 이어온 김남조 시인의 문학적 가치를 조명한 평론집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 중도일보 기자이자 문학박사인 방승호 문학평론가의 『김남조 시의 정동과 상상』이 푸른사상사의 〈현대문학연구총서 58>로 출간됐다. 김남조 시인이 작고하기 전 꼭 받아보고 싶어했던 이 책은 독자적인 서정의 길을 구축하며 시를 통해 희망을 전했던 시인 김남조의 문학에 주목한 연구서이다. 방승호 문학평론가는 정동 이론과 상상의 개념을 통해 김남조 문학을 이해하고, 상상의 힘과 시에 대한 진정성을 논하며, 시인이 지향하는 시론의 본질을 탐색한다. 이 책은 세대를 넘어 문단 원로와 젊은 평론가 사이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방승호 평론가는 “주체 권력을 타파하고 모든 존재가 공존하고 상생하기를 희망하는 탈주체적 사유가 김남조 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방 평론가는 “김남조 시인께 이 책을 바친다”며 “이 책은 문단의 양 끝에 있던 두 사람의 약속이면서 모두를 향한 새로운 약속의 시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기점으로 김남조 시인의 논의가 더 활발해지기를 바란다”며 “우리에게 선물한 시인의 사랑.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김남조 시인은 생전에 "이 논문이 방 박사와 나 사이에 가장 큰 사건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방승호 평론가는 “문학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뒤를 밝혀 보이는데 이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며 “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밝힘으로 미래를 엿보고, 은폐된 존재를 감각의 층위로 끌어올려 생명을 부여하는데 김남조 시인이 말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만 보려고 하지 않고, 어떠한 현상이나 존재의 뒤를 돌아보라는 말. 그렇게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부재를 역설적 현존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일이 김남조 시인과 저의 약속이었던 셈”이라며 “이것은 또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약속을, 시인에 관한 연구로 가장 먼저 지키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의 키워드는 정동과 상상”이라며 “정동 이론은 시인의 사랑이 펼쳐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시인의 사랑은 정서라는 단어로 파악하기에는 그 과정이 길고도 깊었다”며 “그 과정을 사후적으로 '사랑'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정해진 길을 답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 어떠한 마주침에 의해 일어나는 과정적 차원의 정서적 움직임을 밝히고자 정동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며 “논의 과정에서 스파노자, 들뢰즈, 마수미, 누스바움, 벤야민의 이론을 참조했다”고 전했다.
이 책은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흐름을 이어온 김남조 시인의 시 세계를 주목한다. 김남조는 노천명과 모윤숙으로 대표되는 여성 시인들과 이후 세대를 잇는 서정 시인이다. 김남조는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기도와 구원의 자세로 정념의 세계를 탐구하며 여성 주체의 정서적 깊이를 심화했다.
방 평론가는 “김남조는 섬세한 감각으로 사랑과 애상의 정서를 형상화하며 우리나라의 전통적 흐름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시인”이라며 “천주교 신자로서 체득한 신앙적 사유를 속죄와 기도의 자세로 형상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 평론가는 이 책을 통해 기존 연구에서 그간 주목되지 못했던 김남조 시의 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정동 이론과 상상의 개념을 통해 김남조 문학을 이해하고, 상상의 힘과 시에 대한 진정성을 논하며, 시인이 지향하는 시론의 본질을 탐색하고자 했다. 자신만의 서정의 길을 걸어오며 희망을 전달했던 김남조의 긍정과 사랑의 시학을 이해하는 일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김남조 시에 관한 기존 연구를 검토한다. 나아가 시인의 사랑이 펼쳐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정서적 움직임을 밝히고자 '정동'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여성 주체로서 시인이 느꼈던 감정을 분노와 멜랑콜리를 중심으로 탐색하고, 분노의 표출과 해소의 과정 등을 분석했다. 2부에서는 시인의 상상을 다룬다. 시인의 생태학적 사유를 신유물론의 시각에서 재해석했고, 시쓰기에 몰입했던 시인의 열정을 살펴보고 이를 진정성의 개념에서 풀이했다. 3부에서는 시의 형식을 조명했다. 시의 리듬을 율격과 시행 차원에서 다루었다. 특히 김남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겨울 바다」의 본래 형식과 개정된 형식을 비교 분석해 이러한 구조주의적 차이를 ‘앙장브망’(프랑스어 enjambement.앞 행의 끝 구절이 다음 행에 걸치어 있는 시구(詩句))의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김남조 시에 나타난 감각 이미지와 비유 이미지의 형상화 양상을 살펴보고, 은유와 직유가 적용되고 변형되는 형상을 서술했다.
한편 방승호 평론가는 대전 출생으로 충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2년 『시작』에 발표한 <지옥에서 남겨진 시체-허수경 유고시론>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디아스포라와 정동 이론, 신유물론에 관심이 많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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