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크레센도 음악, 크레센도 인생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크레센도 음악, 크레센도 인생

오지희 음악평론가

  • 승인 2024-02-05 14:12
  • 신문게재 2024-02-06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 음악평론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금메달 딴 일이 엊그제 같다. 1년이 훌쩍 지나 몇 달 후면 2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기만 하다. 결승에 올라오기까지 무대에 올랐던 모든 곡이 놀라운 연주력으로 감탄을 자아냈지만, 특별히 파이널 연주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음악의 해석과 감동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연주는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새해 벽두에 영화 '크레센도'를 보았다. 2022년 6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무대 뒤 연주자들의 다양한 감정과 대회에 임하는 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영상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금메달을 향한 임윤찬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왜 영화 제목을 크레센도로 정했는지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영화는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각자의 크레센도를 생각게 했다. 크레센도가 무엇인가? 음악에서 크레센도는 점점 크게 질과 양의 확장을 의미한다. 더더욱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이 영화의 제목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영화 '크레센도'를 통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사실은 국제적인 대회에 참가한 연주자들의 마음가짐이었다. 반 클라이버 대회에 참석해 최종 파이널 6명 안에 든 연주자들의 내면은 긴장과 행복이 동시에 내재돼 있었다. 연주자들은 텍사스 개인 가정집에 머물며 슈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습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호스트들이 제공한 집에서 기꺼이 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 순위가 매겨지지 않았지만 파이널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데 감사와 기쁨이 있었다. 3등 안에 들지 않더라도 반 클라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인지 그 자체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이었다.

우리는 순위와 결과에 얼마나 집착하며 살고 있는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대회는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는 게임이기에 어떤 상황이든 순위에 들면 메달을 딸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은 오히려 더 알맞게, 더 멋지게, 더 놀랍게 감동을 자아내는 예술이다. 더 빨리한다고 순위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빠르거나 과장된 음악은 감점 요인이다. 결국 금메달은 누가 더 완성도 높은 기술과 예술적 표현을 달성했는가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만의 개성과 특별한 해석이 더 큰 박수를 받는 무대라는 뜻이다. 실제 심사위원석에서도 잘 치는 사람보다 다시 듣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영화 '크레센도'는 초반에 임윤찬보다 메달 가능성과 화제성을 지닌 연주자들의 인터뷰에 많은 분량이 할당됐다. 당시에도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클래식 연주자로 우뚝 선 미국 출신 흑인 피아니스트는 음악 외적인 요소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럼에도 임윤찬은 존경하는 예술가들을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표현함으로써 관객뿐 아니라 함께 참여한 연주자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에게 가슴 벅찬 기쁨을 선사했다. 예술가로서의 임윤찬의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크레센도로 인식됐다.

음악적으로도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는 개성있는 해석과 입체감 넘치는 당당한 연주였다. 그 영롱한 음색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웅장한 타건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울림은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돌아보게 한다. 크레센도 개념은 실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음악적 흐름에도 해당한다. 이 작품은 처음 시작하는 선율이 간결하지만, 그 주제가 점점 크레센도로 확장돼 나가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한편 우승자 임윤찬의 압도적인 연주에 경도되서 간과하기 쉽지만, 이번 대회에는 주목할 세 명의 한국 출신 연주자들이 더 있었다. 피아니스트 김홍기, 박진형, 신창용의 음악과 인생도 점점 더 커지는 크레센도가 되길 고대한다. 영화 '크레센도'는 내적으로 우리의 삶과 생각이,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진정으로 크레센도가 되는 길을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잔잔하지만 감동적으로 보여줬다. /오지희 음악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