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예전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작)이란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운명적 사랑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사실 그 제목을 살짝 빌려왔다. 왜 이 영화 제목에 빗대는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는 한국팀 경기를 보려면 보통 새벽 1시경까지 깨어있어야 한다. 카타르는 저녁시간인지 몰라도 우리는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파트에 사는 어떤 분은 극장골 환호성 때문에 잠이 깼다고 한다.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이 연출되었다.
나도 조별 예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토너먼트 경기를 보기 위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단한 축구팬도 아니다. 지역 연고 프로팀 경기에 한 번 구경 간 적도 없다. 한국인의 DNA 속에 내재된 단일민족의식이 이런 국가대항전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어떤 분들은 조별예선부터 16강과 8강전을 보고 꾸역꾸역 승이란 말도 하고, 좀 시원스럽게 못 이기는가 하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선수들에게 비난보다는 응원의 함성을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인터뷰에서 매번 전달한다.
그런데 조별리그부터 타 국가들의 경기를 하나씩 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처음 출전하는 나라부터 단골 나라들까지 이제는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다들 기본기며 테크닉이 대단하다. 그나마 약체라고 평가된 동남아 국가들도 박항서 감독(직전 베트남 축구팀 감독)을 비롯해 김판곤(말레이시아 축구팀 감독), 신태용(인도네시아 축구팀 감독) 등 여러 한국인 감독들이 진출해 K-pop에 비견될 만큼 탄탄한 기본기의 K-sports를 전수해 놓았다.
그런 점에서 수준 차이 때문에 일방적인 경기를 보던 예전과는 달리 티격태격하는 경기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한국팀을 넘어 시야를 넓혀보면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진일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카타르의 축구경기장을 보면서도 그 예술적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후진국, 개도국, 선진국이란 말은 경제적 수준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내면에는 '너희들이 따라올 수 있겠어?'하는 승자의 우월감도 내포되어 있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표현들은 사라져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제 한국은 전형적인 역피라미드의 노인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동남아와 아랍국가들은 피라미드형의 인구구조를 가진 젊은 피가 흐르는 나라가 많다. 미래성장동력에서 우리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단일민족의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팀이 당연히 민족의 설날 명절에 치르는 결승전까지 올라가 대망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쾌거를 바라지만 선린우호의 입장에서 보면 진일보하는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운명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란 주제를 다뤘다. '카타르의 잠 못 이루는 밤'은 한국팀에 대한 운명적인 편애를 넘어 아시아의 진일보를 축하하며 그 대동세계를 함께 응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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