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재)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수많은 유물이 국외로 반출당했다. 약탈, 도굴, 도난 등 불법적 수단 외에도 교류에 의한 선물, 기념품으로 구입 등 여러 방식으로 반출된 유물이 2023년 기준 27개국에 약 23만 점이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현재 기준으로 해마다 7~8천여 점이 증가하고 있으니 고정된 결과는 아니다. 반면 1945년 광복이후 환수한 유물은 12개국에서 약 1만 1천여 점이다. 이 중에 국보로 지정된 것은 2005년 일본에서 환수되어 이듬해 북으로 간 '북관대첩비'를 포함하여 단 6건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환수한 유물이 국보로 지정된 사례도 있다. '경천사지십층석탑', '지광국사탑'이 일본에 약탈당했다가 돌아왔고, 영국인 개스비에게 간송 전형필이 구입한 '오리모양 연적' 등 고려청자 4점, 소전 손재형이 일본인 후지츠카에게 돌려받은 '세한도' 등이 국보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립박물관으로 간 이들 유물이 제작 내력이나 예술적 가치, 특징 등은 설명하고 있지만 반출 경위나 환수 과정 등에 대한 소개는 빈약하다. 일제의 악랄한 약탈을 상징하는 '경천사십층석탑'은 운송하기 편하게 갈기갈기 조각내어 1912년 일본으로 갔다가 대한매일신보를 운영하던 영국인 베델과 미국인 헐버트가 약탈의 민낯을 전 세계에 고발함으로 결국 1918년 조선총독부가 의해 돌아왔다는 긴박했던 6년의 역사적 사실은 충분히 소개되지 않고 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라는 간락하게 소개되어 있다. 박물관의 영문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조차 기술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지광국사탑 :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 '한송사지석조보살상: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조인된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고 설명한다. 1969년 재일 동포 김대현 선생이 구입하여 고국에 기증한 '상지은니묘법연화경'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최근에 되찾아온 것으로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내용만 소개함으로 누가 어떤 노력을 거쳐 환수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유산의 전체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 환수기념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 피해국이다. 또한 환수에 있어 모범국가이다. 특히 민관협력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전 세계 피탈국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에 한국의 환수 노력이 사례로서 종종 소개된다. 그런데도 반출과 환수의 전체 역사를 보여주는 일에는 인색하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유산의 전체 역사를 보여주지 않고, 강제노동의 기간을 삭제함으로 유산의 진정성이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2021년 발의되어 국회에 심사 중인 <국외소재문화유산의 보호 및 환수·활용에 관한 법률안> 제17조에는 "국외소재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와 환수 성과 등을 전시하고 홍보·교육하기 위하여 전시관이나 홍보관, 역사관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법률안은 심의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수년간 재외동포와 외국인 소장가 여럿을 만났다. 대부분 선대로부터 수집한 유산의 행방을 결정해야 할 나이에 이른 분들이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절 애지중지 수집하고 오늘날까지 보관했던 정성이 느껴진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려주거나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 쓰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기증하곤 한다, 이제는 이분들의 소망을 담는 '특별한 박물관 하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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