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청룡의 해인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10여일이나 지났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있고 일 년의 시작은 1월초에 있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일 우선순위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건강이다. 건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루라도 게을리 한다면, 몸은 서서히 기능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요즘 들어 실감이 난다.
두 달 전에 유등천변으로 자전거를 타기 위해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무릎과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어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고 있다. 작은 실수가 병을 키울 수 있음을 온몸으로 체득한 순간이었다.
겨울철의 날씨는 눈이 오거나 추워야 하는데, 올 겨울의 날씨는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이라는 절기가 지났는데도, 춥지가 않아 보기 드물게 겨울비가 자주 내리고 있다. 화석 연료의 사용 증가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오늘은 일주일전에 연산의 전원마을에 살고 있는 사돈부부와 겨울철의 별미인 '굴'을 맛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우리들의 식도락 여행을 시기라도 하는지 날씨가 훼방을 하는 것만 같다.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예감은 적중했다. 반갑지 않은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9시 40분경에 아내와 같이 출발하여 연산의 작은 주유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돈부부를 태우고 국도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에 보이는 겨울철의 농촌풍경은 벌거벗은 나목(裸木)처럼 을씨년스럽고 쓸쓸함이 감돌고 있는 것 같다. 백제시대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로 접어드니 사비(泗?)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백제대교를 지나니 현직에 있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한 카누선수를 응원하기 왔던 백마강이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겨울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어 운전하고 있는 필자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2시간을 달리다다 보니 어느덧 천북면에 다다랐다. 도로변의 가로수로 특이하게 심어놓은 소나무가 이발을 끝낸 사람처럼 잘 다듬어진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상록수처럼 사철 푸른 소나무가 오고가는 차량들의 매연에도 짜증을 내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있다. 드디어 보령의 최북단에 있는 '천북 굴 단지' 에 도착을 했다.
바닷가에 있는 굴 단지는 평일인데도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그런지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잘 정돈된 굴단지 상점들은 대부분이 규격화되어 있어 손님들이 마음이 가는 데로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 된다고 한다. 필자와 아내는 사돈부부와 굴 단지를 둘러본 후 사돈부부에게 식당 선택를 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사돈은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은 싫다며 호객행위를 하지 않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와 가리비와 굴 찜을 먹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천북 굴 단지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칼슘이 풍부해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겨울철의 별미인 신선한 바다의 풍미(風味)를 느낄 수 있는 굴을 먹을 수 있어 좋다.
굴은 두 종류의 메뉴로 구이와 찜으로 선택하여 주문을 할 수 가 있다. 구이는 맛은 좋으나, 구울 때 탁탁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튀기는 굴 껍질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옷에 하얀 물질이 묻는다. 찜은 먹기에는 좋지만, 맛은 구이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리는 굴 찜과 영양굴밥을 주문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굴 찜이 나오기 전 밑반찬으로 나오는 굴전과 무침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인 가리비와 굴이 커다란 찜통에 수북하게 나왔다. 가리비를 맛보던 사부인이 한 말씀 하신다.
"겨울비 내리는 날 이렇게 바닷가 근처에 와서 풍미가 있는 가리비를 맛보니 행복하네요."
필자의 아내도 한 마디 거든다.
"사돈 부부 덕분에 겨울의 별미인 싱싱한 바다의 향기가 나는 굴 맛을 보게 돼서 좋네요."
사돈도 복분자주와 함께 굴 찜과 굴전을 먹으며 농담반 진담반 한 마디 한다.
"싱싱한 굴과 복분자주를 사돈부부와 함께 하니 아픈 곳이 저절로 나은 것 같은데요."
필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좋은 분들과 함께하니 굴 맛이 꿀맛이네요. 자주 기회를 가집시다."
모두들 천북 굴 단지의 굴 맛에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다.
운전을 하는 나를 제외하고 몸에 좋다는 복분자주와 함께 먹으니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간장을 넣고 비벼서 먹은 영양이 듬뿍 들어있다고 하는 굴밥으로 식사를 마무리 했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겨울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방파제를 바라보니 바닷물이 빠져나간 곳은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속살을 드러난 채 다가온다. 고소한 군밤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아내는 차에 타고 가면서 먹으려고 한 봉지를 추위에 홀로 앉아 있는 군밤장수에게 샀다. 차안으로 퍼지는 냄새가 향수처럼 퍼진다.
겨울철은 밤이 길고 낮의 길이는 짧아 여행이나 등산을 하려면 일찍 출발하여야 하고 일찍 돌아 와야만 한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은 안개가 구름처럼 앞을 가려 가시거리가 짧아 운전을 하는데 눈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비로 인해 인근에 있는 보령이나 안면도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따뜻한 봄의 향기가 묻어나는 4월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여행이나 식도락여행은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을 먹어도 불편한 관계에 있으면 그 맛이 좋을 리 없고, 그로 인해 소화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수도산에 있는 대전시립도서관에 근무할 때이다. 점심식사 때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직원들을 피곤하게 하는 부서의 장과 함께하는 날마다 긴장의 연속이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겨울철이면 떠오르는 곳 바다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천북 굴 단지'에서의 사돈부부와 함께한 맛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사비정원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여행을 마무리 한다.
덕천 염재균/수필가
염재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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