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밥상머리란 말의 사용 예로는, "감기는 밥상머리에서 물러간다"를 들 수 있다. 밥만 잘 먹어도 감기 정도는 절로 물러간다는 뜻이기에, 요즈음 같은 겨울철에 딱 들어맞는 말이리라.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은 아마도 '밥상머리 교육'일 것이다. 이는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뤄지는 인성과 예절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가늠자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대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맛나게 먹는데, 어르신들이 수시로 밥상머리 교육을 하실 때는 사실 짜증도 났고, 어느새 밥맛마저 도망가버린 듯한 추억이 있다. 예절 교육과 같이 아무리 필요하고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생존의 원초적 본능이라 할 수 있는 밥 먹을 때만큼은 그렇게 좋게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밥상머리, 특히 모처럼 즐겁게 만난 명절 밥상머리 모습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명절 밥상머리는 온통 정치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먼저 언론부터 보자. 신문과 방송사는 명절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쏟아내고, 이를 받아 명절 민심이라는 미명 하에 진영과 진영이 죽기 살기로 부딪히는 기사를 써대고, 방송사는 누가 부여했는지도 잘 모르겠는 정치 평론가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하나씩 걸친 패널들을 출연시켜 토론이 아닌 거의 억지 수준의 일방적 말 폭탄을 쏟아내게 하고 있다. 또 밥상에 앉은 우리네는 어떤가? 조금 과장한다면, 모두가 우국지사가 된 듯 기사 하나하나에, 패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운명이라도 걸린 양 우격다짐으로 열변을 토하지 않던가? 그리고 이내 미안함과 후회만이 밥상머리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국, 캐나다, 유럽은 어떤가? 식탁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금물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 자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혹여 정치 이야기라도 하는 사람과 식탁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를 교양 없는 무례한 사람쯤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미국에서 우리의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을 꼽으라면, 아마도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런 명절에 선거용 여론조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정치가들의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를 따지고, 이를 가지고 명절 민심이 이러니저러니 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런 유럽에서도 밥상머리에서의 정치 이야기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는 실제 예가 있다. 드레퓌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독일 간첩으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유대계 드레퓌스의 재심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일었다. 과잉된 애국주의와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국민 작가 에밀 졸라와 같이 드레퓌스의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측과 그가 유대인이기에 굳이 재심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유대주의 측이 멀쩡한 프랑스를 완전 두 동강 냈다. 그래서였을까? 가족끼리 평화롭고도 즐겁게 시작된 만찬이 드레퓌스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가면서 난장판으로 변하는 모습이 당시의 삽화에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설 명절이 코앞이다. 아마 이번 설도 예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총선을 앞두고 있기에 어쩌면 더 심한 정치 과잉의 설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명심하자. 그 어떤 정치가도 우리네 삶을 그리 쉽게 좋은 쪽으로 바꾸지 못해 왔다는 것을….
하여, 이번 설만큼은 밥상머리에서 정치의 영역을 좀 뒤로 물리고, 이해와 사랑, 따뜻함이 담긴 모습으로 채워보자, 즐거운 명절을 칼과 싸움이 난무하는 정치 명절에서 명절 본연의 모습으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촌스러운 명절 밥상머리 정치는 더 이상 아니지 않은가?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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