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것도 색이고 하얀 것도 색이니 흑백TV도 단순해서 그렇지 컬러TV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첫 컬러TV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결혼한 제가 흑백TV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요. 결혼 2년 후, 광주군청에서 경기도청으로 직장을 옮기며 수원으로 이사했습니다. 지금의 과천시인 과천사업소에서 2년간 일하고 도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그때 함께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아직도 흑백TV를 보냐!'며 놀란 겁니다. 당시엔 컬러TV 수상기가 고가의 상품이었고 흑백TV도 큰 불편이 없었지요. 컬러보다는 흑백TV를 보는 집이 많았으니 그리 신경 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살짝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지요.
한동안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사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는 측과 사업추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상반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지요. 과거 천안함 피격사건을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고 최근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장군의 흉상문제나 야당대표 피습사건까지도 진영에 따라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극단적 흑백논리로 갈리는 건 씁쓸한 일이지요. 다양한 생각이 어우러지는 사회문화가 아니라 오직 내 편 네 편, 두 갈래로 나뉘는 건 불행한 일입니다.
진영 논리는 고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극명하게 갈렸지요. 이어 '조국 사태' 이후 촛불 행렬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고 상반된 주장이 극명하게 펼쳐졌습니다. 같은 문제를 두고 진영에 따라 주장하는 논리가 전혀 달랐지요. 답을 정해놓고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니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겁니다. 내 편 네 편을 지나치게 가르면 우리의 내일은 희망적이지 못하고 크게 기대할 여지도 없어지지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진보니 보수니, 극우니 빨갱이니 하는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으면 미래가 암울하지요.
살다 보면 죽자 살자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이 있지만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그리 쉽고 간단하지 않은 데다 100% 옳은 일도 없지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진영별로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내 편, 네 편 아옹다옹 다툴 때가 아니라 국민적 단합이 중요한 것이지요. 편 가르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사랑과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다양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하는 복잡 미묘하고 글로벌한 세상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상품이 나오고 자국(自國)의 이익을 위해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글로벌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팔색조처럼 다양한 얼굴과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 불쌍할 지경이지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삶의 질이 윤택해집니다. 그런데 오직 내 편 네 편, 흑과 백으로 나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
공룡이 멸망한 것은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게 세상이치이지요.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흑과 백, 옳고 그름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맞고 틀림만 있는 게 아니라 '다름'도 있는 것입니다. 다양함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밝은 내일을 담보할 수 있지요. 내편 아니면 저편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는 위험합니다. 흑백논리는 세상을 황폐화시키지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가 급변하는 환경에 걸 맞는 시대적 소명(召命)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홍승표 / 수필가,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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