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몇 년 전부터 구독자가 적어서인지 아파트 문이 아닌 현관 우편함에 신문을 넣어둔다. 22가구가 사는 아파트 통로에서 신문 보는 집은 한 집이다. 옆 통로에도 보이지 아니한다. 주변 지인들 말을 들어보니 다른 곳도 대개 비슷하다. 지난 시절에는 여러 집에서 신문을 구독했다. 문밖에 쌓인 신문으로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알았다. 휴가를 가거나 명절에 집을 비울 때는 경비아저씨한테 보관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동안 숱한 인물의 부침과 IMF 등 많은 사건을 신문에서 읽었다. 이른 아침 문밖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와 읽고 출근 준비를 하였다. 어쩌다 신문이 오지 않으면 무기 없이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허전했다. 간밤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신문을 읽으면서 궁금증을 풀었고 호기심을 키웠다.
신문에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촘촘히 들어 있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젊은 시절 종이신문을 통해 다양한 기사를 접할 수 있어 상식이 풍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분야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하더라도 맞추어 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디지털에 파묻힌 젊은이들은 종이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 같은 디지털미디어로 기사를 검색한다. 시간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은 신문 구독을 돈과 시간의 낭비로 여기는 듯하다. 또한 내 주변의 엇비슷한 나이대에 물어봐도 눈이 흐리고 세상사가 무덤덤하여 종이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도 TV·인터넷·유튜브로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돌이켜보니 종이신문의 가성비는 좋았다. 30여 년간 신문 구독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육칠백만 원 정도이겠지만 그 돈으로 얻은 지식의 축적, 호기심의 자극, 마음의 양식은 훨씬 크다. 신문을 차례로 넘기면서 기사를 훑어가면 변화하는 세상의 윤곽이 그려진다. 마음에 들거나 고정적으로 보는 기사는 꼼꼼하게 읽고 관심 기사는 스크랩하거나 네이버의 'Keep'에 저장한다.
사실 빛의 속도를 다투는 시대에 가장 빠른 뉴스나 지식 전달체는 TV나 디지털미디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스치는 느낌이 들뿐더러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제목에만 끌린다. 숏폼같은 영상매체들은 자극적이며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것이기에 숙고의 시간이 없어 길들여질 우려가 있다. 반면 신문은 한 편의 기사를 내기 위해 기자와 기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모음집과 같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종이신문은 천천히 내용을 살펴 가면서 보니 양질의 정보를 음미하며 먹는 기분이다.
하지만 종이신문의 하루 이용 시간이 2.7분(2021년)에 불과하다는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신문 구독자는 점점 줄고 있다. 나 또한 침침해지는 시력 때문에 신문 보는 게 중독인가 싶기도 하다. 종이신문은 세월을 함께 낚은 오랜 벗이다. 벗을 통해 견문을 넓혔고 세상사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얻었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뇌에 꾸준한 자극을 주면 뇌세포가 새로 생기며, 언어능력은 육칠십 대에 최고에 이른다고 한다. 신문은 다양한 주제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문해력을 키워주기에 기사를 읽는 것은 일종의 매일 하는 지적훈련이다. 더군다나 나이 듦에 '반려친구'처럼 늘 말없이 대화를 나누는 역할까지 하니 일석이조다.
오랜 벗처럼 긴 세월 함께한 종이신문이 새해에는 외롭지 않게 다른 친구를 여기저기서 만났으면 좋겠다. 언젠간 종이신문을 읽을 수 없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 정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로 인해 세상이 넓어졌고 재미있었다고.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