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꽃을 좋아한다. 선인, 악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꽃을 좋아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나 삼한갑족(三韓甲族) 따질 것 없이 꽃을 좋아한다.
꽃은 아름다워서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며, 밝고 환하게 해 준다. 꽃을 알고 좋아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꽃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다. 향기는 진한 것도, 옅은 것도 있다. 꽃이 향기가 있듯이 사람의 인품도 향기가 있다. 인품의 향기는 한 마디로 얘기할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인간다움이다. 인품의 향기 중 가장 좋은 건 누구나에게 힘이 되고 그의 등불이 돼 주는 거다. 온혈가슴과 배려 관용 사랑은 그에 빠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것이다.
꽃의 향기는 좋은 꽃일수록 오래가며 멀리 가는 것이다. 인품의 향기도 그런 것이다. 꽃의 향기는 3십리. 마음의 향기는 3백 리라 했다. 또 인정의 향기는 1천 리요, 나눔의 향기는 1만 리라, 인격의 향기는 3만 리라 했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은 몇 리나 가는 인품의 향기를 지니고 사는가!
최근에 축하 차 보낼 화분 하나를 사기 위해, 노은동 꽃 단지 화원에 간 일이 있었다.
아름답고 고운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꽃들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각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향기로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있었다. 괜찮은 화분 하나를 사기 위하여 화원을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닌 것이 무려 30분이나 지났다. 특히 동양란의 향기가 너무 좋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마음에 드는 화분 하나를 사서 보내고 집에 왔다.
집필 중이던 수필을 마무리하려고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 있으니 향긋한 난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거실 어디에도 난은 보이질 않았다. 한데 분명한 건 옅은 난의 향기였다. 어디에서인가 새어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5감각을 동원하다시피 진원지를 찾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후각을 자극하는 거였다. 그건 바로, 입고 있는 옷에서 풍겨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화원에서 묻어온 난향이 우리 집까지 점령하는 중이었다.
순간 순자(荀子)의 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은 '삼밭 가운데에 나 있는 쑥'을 의미하며, 키가 작은 쑥도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키가 크고 곧게 자란 삼(대마초)을 닮아서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문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痲中 不扶而直:삼밭 가운데 나 있는 쑥은 누가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겠다.
악인이나 불량한 사람도,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면(사귀면) 그 영향을 받아서 좋게 동화된다는 비유이니 근묵자흑(近墨者黑)을 무색하게 하는 단어라 하겠다. 환경에 따라서 악도 선으로 바뀌고 교화된다는 말이니 좋은 의미의 단어라 하겠다.
꽃 얘기를 하다 보니 식탁위에 꽃아 둔 화병 속의 꽃을 간과할 수가 없다. 70년대 후반 대전여고 제자 안상호 퇴임교사가 지난주에 보내온 것이다. 내 좋아하고 아끼는 제자여서 최근 출간한 제2수필집'행복 한 짐에 묻어온 아픔 한 조각'을 택배로 보냈다.
아, 그랬더니 꽃다발에 꽃꽂이 화병까지 택배로 보내온 것이 아니겠는가!
곁들인 예쁜 카드 엽서에는 『당신이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을 담은 이 순간을 기억해 주세요. 선생님! 두 번째 수필집 출간을 축하드려요. 항상 열심히 활동하시는 선생님 모습이 뵙기 좋아요. 글과 삶이 똑같은 선생님의 인품을 존경합니다. 늘 지금처럼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안상호 드림』
꽃보다 아름다운 인품의 향기!
제자가 보내온 아름다운 꽃보다, 그의 아름다운 인품의 향기에 코끝이 찡하고 울컥했다.
작년 스승의 날엔, 단장하고 예쁘게 살라고 화장품을 보내주더니, 지난 12월엔 황금향 1박스로 가슴 느껍게 하고, 이번은 인품의 향기로 날 울리는 거였다. 제자라고는 하지만 40개 성상이 훌쩍 지난 세월 속에서도 잊지 않고 챙겨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감사했다.
70년대 전국의 명문고 대전여고의 공부 잘하는 수재였는데 현재는 장원 감 아름다운 향기, 인품의 향기로 날, 두 번, 세 번, 울리는 거였다.
얘기가 나온 김에 안상호 제자에 대해 얘기를 좀 해야겠다. 제자는 내가 덕산고등학교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덕산고 병설 덕산중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수재로서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안상호 학생이 고등학교 진학할 70년대 당시, 대전여고는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는 명문여고였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는 수재, 천재 소리를 듣는 학생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대전여고였다. 그런 학교를 촌 소재 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상호는 당당하게 들어간 거였다.
수재임에 틀림없다. 내 지난 70년 대전여고 시절에 사제지간의 연이 됐지만, 2018년도에는 대전평생학습관 늘푸른학교에서 어르신들 문해교육 교사로서 같이 근무를 했다. 나는 중학과정 국어교사로, 제자는 고교과정 국어교사로 어르신들을 가르쳤다. 그 당시 안상호 교사는 헌신적인 교육 열정으로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따듯한 가슴,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꽃보다 아름다운 인품의 향기로 주변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존경받는 교사였다. 그야말로 안상호 제자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의 마(痲)에 해당하는'삼'과 같은 존재요,'난향'과 같은 존재라 아니 할 수 없다. 삭막한 세상을 아름다운 인품의 향기로 교화시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나이 되도록 날 가르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데 나는 제대로 사람노릇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안상호 제자는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을 깨우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 인생의 스승이라 하겠다. 안상호 제자는 마(痲)와 난향의 속성을 다 갖춘 보석중의 보석이라 해도 잘 못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내가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이라도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근원을 생각해보고 마시라는 깨우침을 새기게 하고 있으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기쁨이 어디 따로 있다 하겠는가!
보석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천리 향, 만리 향의 인품이어서 오래오래 그 곁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이 바로 보석이지!
솔향 남상선/수필가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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