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
소아과 의사로 30여년 간 일하는 동안 제일 듣기 싫은 얘기가 '우리 애가 체했어요' 였다. 젊은 의사 시절에는 '세상에 체했다는 진단명은 없다'며 애기 엄마를 설득하려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과 타협하게 되었다. 병명으로는 다양하지만 잘 나을 것이 분명한 환자에게는 '체했지요?' 하는 질문에 흔쾌히 동의했고, 심지어 내가 먼저 '체했다'고 얘기하면 애 부모는 만족하고 더 이상 아이 상태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오랜만에 '체했다' 소동을 겪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의사를 찾았고, 나에게 '친구가 체했으니 손 끝 따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진단은 일반인인 내가 했으니, 의사인 당신은 치료만 하라'는 얘기로 들렸기에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언뜻 보기에도 환자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뇌졸증으로 돌아가신 의사 생각도 났다. 간단한 진찰 후 물어보니 평소에 혈압이 낮았다고 한다. 거기에 여행 중 피로와 공항 도착 전에 받은 마사지로 인해 저혈압이 심해져 나타난 증상으로 짐작되었다. 머리를 낮추고 다리를 올린 상태로 누워 있기를 권했고, 조금씩 회복되던 중에 공항 의료진이 모시고 갔다가 비행기 출발 전에 회복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누구나 선입견을 갖고 산다. 그것이 논리적인가는 차후 문제이고 내가 믿으면 그것이 나에게는 진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책도 많이 읽고 많은 사람 만나 대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방향은 거꾸로인 것 같다. 내가 믿는 것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만나게 되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알고리즘이 같은 생각의 친구들을 소개한다. 이런 과정이 쌓이다 보니 절대로 생각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아지고, 그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의 끝은 어디일지 걱정이다.
지난 해를 돌아보며 대학교수들이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한 대학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견리망의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 정치란 본래 국민을 '바르게(政=正)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견리망의 하면 우선은 풍요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공멸하게 된다"며 비판했다고 한다. 선입견은 아집을 부르고 아집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면 견리망의하는 지도자들을 만드는 토양을 조성할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올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세월도 참 힘들었는데, 앞으로 몇 년 간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시절을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편견은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방해하고, 결정이 바르지 못하면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이로움만을 좇으면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수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매일 매스컴에서 접하고 있다.
올해 나의 소망은 첫째, 무엇이 좋은 이(利)이고 무엇이 나쁜 '이' 인지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소망은 힘들지라도 의(義)로움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비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몇 년은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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