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기자. |
지난해 가을 친한 친구를 먼저 떠나 보냈다. 날씨 좋은 주말 함께 캠핑을 가고, 퇴근 후 회에 소주 한잔을 하고, 그는 내 일상 속에 습관처럼 있었다.
그를 떠나 보내기 며칠 전 저녁도 어김없이 만나 술 한잔을 곁들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몇 년 전에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3년 전 금요일,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가족의 사망 소식을 알리곤 우는 나를 달래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정부는 나를 자살생존자라 부른다. 자살생존자란 가족, 친구, 동료 등 사회적 관계 내에서 발생한 자살을 경험하고 그러한 심리적 외상을 견디며 생존해 가는 사람을 뜻한다.
나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건 내가 버티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느 순간 돌이켜 보니 나는 보통의 자살 생존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대부분 죄책감과 후회에 빠지고, 자살 유족이라는 낙인이 무서워 제대로 된 애도조차 하지 못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막상 어느 기관에 연락해야 할지, 어디에 전화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너무 많은 기관과 분산된 연락 시스템은 상담을 포기하게 만들 이유가 됐다. 어렵게 건 전화에도 "자살 유가족 상담에 친구는 아직 포함되지 않아요"라는 말에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다 최근 상담처조차 찾기 힘든 상황을 아주 조금이라도 개선해 줄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를 '109'로 통합해 운영 중이다. 내가 겪었던 불편함을 모두가 느꼈는지, 그동안 다들 상담 전화에 거부감을 표해왔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긴급 번호 '109'를 만들어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았다. 20명이라는 적은 인력이 늘어난 상황에 정말 꼼꼼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을까. 여전히 슬픔에 빠진 이들이 실제로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까. 자살 유가족 범위가 좁아 여전히 정부의 체계화된 지원 망에서 많은 이들이 벗어나 있다는 문제점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선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자살률, 숫자 줄이기에만 매도한 것이 아닌 실제 우리를 도울 방법이 생기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언젠가, 내가 먼저 그곳을 찾아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나를 그리고 우리를 도와달라고.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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