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인생 역시 지나고 보면 짧습니다. 췌장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 세 자녀에게 남긴 '마지막 강의'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고(故) 랜디 포시 교수는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이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로부터 과거 1000년간 가장 탁월한 지도자로 선정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마지막 유언을 통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아주 짧은 한순간을 위한 것이었어"라고 탄식했지요.
우리 모두 인생은 짧고, 죽음이라는 운명은 피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우울증'에 안 걸리고 즐겁게 사는 것은 막상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인도의 고대 서사시에도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사람이 주변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프로이트의 말대로 인간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불멸성을 확신합니다.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이유로든 죽게 되지요. 따라서 인간 자체가 가변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그렇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육체는 점점 망가지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존재로 향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항상 지나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금 존재하고 있지만 비존재인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죽음 이후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살게 된다고 믿게 하지요.(유요한, '죽음을 성찰하고 그 너머를 바라보다' 강의 참조)
이렇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 인정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무시해 버리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무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고, 일반적으로는 종교에 의지하여 영생을 믿으며 살거나 아니면 죽음을 인생의 끝이라고 보고 사는 동안 현실에 충실하며 행복과 보람을 만들어가는 삶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살아 있다'라는 자작시를 통해 죽음을 성찰해 보았습니다.
'봄 나뭇잎 햇살 받아 빛을 발하더니/여름의 나뭇잎은 파랗다가/검어지면서 졸고 있다/속살이 찌듯, 생명수를 실컷 마신 듯/만족스런 표정 긴 침묵으로 들어간다/
가을이 되면 노랑,/빨강으로 옷 갈아입고/겨울이 되면/낙엽이 되어 땅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도 똑같은 나뭇잎/자연은 영원하다/봄 여름 가을 겨울 있고/생사고락 함께 하지만/내년에도 똑같은,/다른 내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신이 나를 하늘나라로 부르시고/또 다른 나를 내보내신다/나도 살아있고 다른 나도 살아있다/우리는 모두 영원히 살아있다'
이런 시를 쓰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이라는 거칠고 누추한 덮개가 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깃든 삶의 지혜를 들여다보게도 되고, 이웃을 배려하는 작은 행복도 느끼며, 흔해서 쉽게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확인하면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과 사물을 온전하게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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