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필요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대전의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이성희 기자) |
2023년 6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피해자에 대한 현황 파악이 가능해졌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 경찰 수사 의뢰 건수로만 대략 피해자를 파악했기에 피해자 구제를 위해선 정확한 파악이 필요했다. 그러나 피해자로서 인정받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부는 공경매가 시작되거나 임대차계약이 끝난 이들만 피해자로 봤기 때문에, 대전에서는 법 시행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초 기준 피해자로 인정된 이들은 겨우 26명이었다. 특별법 신청 건수는 많았으나 피해자로 결정되는 과정이 오래 걸린 탓이다.
불과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2024년 1월 대전의 피해자는 얼마나 늘었을까? 1월 5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는 1167명이다.
반년도 안 된 사이 44배가 늘어난 것이다. 피해자는 더 늘어날 전망을 보인다. 아직 평가 단계에 놓여 있거나, 지난해 말 임대차 계약이 끝난 이들이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여 그 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대전 피해자 중 2030 청년 세대는 전체 86%나 차지한다.
지역의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의 삶이 절망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대전 전세 사기 대부분이 다가구주택에서 터진 탓에 정부의 특별법 지원 선상에 놓이지 못해 현재까지도 많은 지역 피해자들은 어떠한 구제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23년 7월 31일 대전시청 앞에서 열린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대책위 관계자들은 전세사기 피해로 생을 마감한 대전 피해자를 위해 짧은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이성희 기자) |
대전에서 전세사기가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말부터다.
전직 방송기자와 부동산 법인 관계자가 연루된 300억 원 상당의 깡통오피스텔 사건이 터진 후 지역에서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지난해 봄, 따뜻한 날씨와 달리 지역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대전 서구와 대덕구 일대에서 수십, 수백억 원 규모 전세사기가 연이어 발생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법원으로부터 뒤늦게 듣고 나서야 피해자들이 부랴부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사기를 벌인 이들은 다 달랐지만, 수법은 비슷했다. 선 순위 보증 내역을 속이거나, 처음부터 돈을 돌려줄 생각 없이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돌려막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이었다. 피해자들은 빼앗긴 돈을 찾기 위해선 전문가가 돼야 했다.
집과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을 찾아달라며 수사 의뢰하고,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해 지역 언론에 접촉하며 피해 상황과 심각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서로 힘을 합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벗어나려 했지만, 작정하고 돈을 주지 않는 그들을 벌하기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결국, 6월 자신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외국으로 도주한 집주인을 찾을 길이 없다고 판단한 50대 세입자는 극단적 선택을 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결국, 지역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피해자들은 지난 7월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를 출범시키고 단체 행동에 나섰다.
그런데도 대전 피해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서로 경쟁을 하는 듯, 피해 규모는 점차 커졌다.
청년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100억 원 이상 규모의 사건이 터지는가 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까지 속고 피해 규모만 30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역 부동산 법인회사 대표 김모(49)씨는 LH의 전세 지원 제도를 악용해 159억 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이미 재판받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기를 입증하는 과정부터 힘든 상황에, 겨우 사기 행위를 인정받더라도 돈을 돌려받기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실질적 지원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단체집단에 나섰다. (사진= 김지윤 기자) |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이라는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빈털터리 신세로 상대방에게까지 고통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어요."
31세, 젊은 나이지만 피해자 김성수(가명)씨 에겐 희망이란 단어는 사치로 느껴진다. 대전 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성수씨는 2년 전 자본금 1억과 대출금 6000만 원을 가지고 투룸 전셋집을 구했다. 대출금을 갚는 일이 빠듯했지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의 미래를 위해선 힘들진 않았다. 이제 곧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으면 여자 친구와 돈을 모아 작은 구축 아파트 하나를 매매할 수 있으니.
2024년 봄 5월, 결혼 날짜도 잡고 식장도 예약했다. 행복한 생각뿐이던 성수 씨였지만, 이제는 그 꿈이 무너졌다. 작년 9월 계약 만료였기에 3개월 전부터 집주인에게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계약 만료 전날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미리 봐뒀던 구축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 됐다. 보증금 없이는 돈 한 푼도 없는 신세였기에, 수개월 고민을 거듭했던 성수씨는 결국 결혼을 포기했다. 그녀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계획은 마치 한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며 시간을 버텨왔다. 더 좋은 집으로 가기 위한 계획도, 새로운 꿈을 찾아보려 했던 청춘들, 등등. 그들은 그간의 고통과 설움을 담아 피해자들의 사례를 모아 책을 발간했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이 아직 힘든 여정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했으니까.
'월세, 전세 그리고 지옥', 피해자들의 울분은 여전하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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