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세월은 누구에게나 흐르며 잠시도 머무르지도 않으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은 말없이 어디론가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계속 흐른다. 어느 날 불현 듯 나이가 들면서 세월이 빨라진다고 느끼게 된다. 아마 그건 젊었을 때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자신이 살아온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기간일 수 있지만, 노년의 삶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은 지난날에 비해서 그다지 오랜 시간은 아닐 수 있기 때문 일게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지루하다고 느끼거나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무지개에 접근해 보면 무지개는 사라지고 없듯이 세월의 흐름은 거리를 두고 보아야 체험할 수 있고, 반복적인 특정한 관점으로 인해 굳어져버린 세월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세상살이 속의 세월의 배는 결코 똑 같은 방향과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각각, 세월의 돛단배를 타고 인간의 시간을 산다. 우리는 편의상 같은 시간대를 살며 동반자들과 함께 노를 저을 따름이다.
운전을 하다가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속도를 낮추면 사고가 줄어듭니다.'라는 차에 씌어 진 문구를 만나기도 한다. 이 말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의 속도와 행동의 속도의 균형 상태'가 무너지고, 반복되는 일상은 뇌(腦)에서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줄어들며 행동의 반응 속도가 감속됨을 보여준다. 결국 몸과 마음이 세월의 속도에 균형 맞춰 춤을 추지 못한 결과다. 그렇다고 세월을 과도하게 느껴 허무주의에 빠질 일도 아니다.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세월은 그 흐름의 실체를 손으로 잡을 수 없기에 늘 불안한 '탐구의 계기판'을 들여다보는 '시계의 노예'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어떻게든 세월은 흘러간다는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두리번거릴 것인가. 세월과 삶의 마당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라면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겨나는 것 일게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서 쌓여가는 것이다. 즉 우리는 세월에 따라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삶이란 놀이터에서 다시 사는 것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매년 마다 성큼 성큼 찾아오는 세월. 새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의 '습관화 되어 몸에 박힌 세월의 속도'는 담대하게 첫 걸음을 내딛고 싶은 새해의 산뜻한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가로막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타고난 세월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 나서는 수수께끼 해결사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희망처럼 새 출발을 하면 어떨까. 무엇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영원히 식지 않는 마그마 방이 끓고 있다.
오늘의 아침이 내일의 아침일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세월의 굴레란 동굴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이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열정이라는 화산이 폭발하여 삶의 에너지가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잊지 말자! 삶에는 신비한 열정 주머니가 숨어있어 세월에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아름다운 힘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세월의 흐름이 품고 있는 내적인 힘의 알갱이는 '나는 실천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이다. 푸른 용의 여의주(如意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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