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
2018년 서울대 주병기 교수는 부모의 학력, 소득 수준과 자녀의 수능 고득점과 고소득 획득 등 성공의 여부를 측정하는 개천용지수(기회불평등지수)를 소개했다. 이 지수는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학생이 학업성적 상위 20%에 오르지 못할 비율로 정의되며, 수치가 높을수록 기회 불평등의 정도가 크다는 의미다. 주 교수는 1990년 이후 26년 동안 한국의 기회 불평등 정도는 두 배 가량 커졌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지속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이 추세는 동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학벌주의 사회이다. 대학교의 간판과 최초 직업이 평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듯 보인다. 최근에 이런 사회 현상은 더욱 심화해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는 2,131명이 의대 진학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상은 대학 서열화가 초래한 학벌주의와 특정 직업 쏠림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출현한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 발달의 가속화는 학벌주의를 빠르게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직업별 AI 노출 지수를 근거로 고학력, 고소득 노동자일수록 인공지능에 더 많이 노출돼 대체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업은 의사, 회계사, 변호사, 자산운용가 등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으로는 기자, 성직자, 대학교수, 가수나 경호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의 결과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서 창의적인 직무까지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면 업무에 수반되는 인간적인 관계는 항상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교육 분야는 인공지능에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현재 대부분 대학교의 교육과정은 지식과 정보 전달 위주의 매뉴얼로 편성돼 있다. 그 속에서도 대면 교육을 하는 교수자의 지식 전달은 동영상 강의,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 등을 통해서 대체 되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막강한 능력은 교육계에 소리 없이 내 앞에 다가와 있는 회색 코뿔소와 같이 침투해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고등교육은 빠르게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배울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간 교수자와 인공지능의 능력의 차이는 두드러지게 차별화될 것이다. 정형화된 지식이나 이론 전달에 인공지능 교사는 반복적인 피드백을 정교하게 학습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반면에 인간 교수자는 학습의 철학적인 측면, 동기부여 코칭을 통해 학습자 개인의 역량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인간 교수자는 학습자가 목표를 설정하도록 돕고, 포기하지 않고 학습을 지속하도록 하며, 학습과정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소통과 협력기술을 배우도록 돕고, 갈등 해결을 도우며 학습자의 정서를 공감하고 관리함으로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다.
조만간 우리 사회에서도 대학교의 간판이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여부가 새로운 학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채용시장에서는 명문대 간판이 아니라 뛰어난 소통능력으로 협력을 잘해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선호된다. 이에 더하여 회사는 학벌이 아닌 인공지능 기술을 자신의 비서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요구할 것이다. 조만간 인공지능 기술이 촉발한 학벌주의의 몰락이 시작될 것이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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