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
이 현상을 두고 미국 텍사스대학의 한 교수가 발제한 논지가 주목된다. Similar space-Different living(비슷한 형식-다른 생활)이란 표현으로 사는 곳은 비슷하나 사는 방식은 다른 주거문화에 대한 바로 아파트 건설이 만연한 우리를 반은 부정 반은 긍정으로 바라보았다. 집합주거의 개념은 고대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가까운 시간의 공동주택의 시작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연 독일의 바우하우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를 들 수 있고, 그보다 좀 더 앞서서는 네델란드의 아그네타 파크 노동자 집합 주거가 지금 공동주택 시작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1900년대 초반 독일을 중심으로 표현주의건축이 성장할 시절, 미쉘드 클락이란 네델란드의 건축가가 세운 사회집합주거는 내용과 형식은 유사하고 외적 표현은 좀 다른 공동주거의 시작들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968년 영국에선 아파트 붕괴 사고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공동주택은 바로 도미노이론에 기초한 판상형식의 반복형 공동 주거였고 위아래 구분 없이 한곳이 무너지면 전체가 연이어 무너지는 형식이었다. 영국의 로난 포인트 사고였고, 공동주거형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폭제가 되어 아파트의 형식이 불안정한 형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으며 새로운 저층 주거에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오래전에 기초한 영국 레이몬드 언윈의 전원주택운동이 급속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최상의 이상적 대안으로 떠올랐고 영국은 재빨리 신도시 계획에서 전원도시 안을 수립한다. 송어요리가 많은 영국, 슈베르트의 트라우트(송어)가 귓전에 울리며 바로 이 경쾌한 음악이 들리는 듯한 주거문화, 바로 내집 앞에서 낚시를 하는 전원도시 밀턴 키인스가 TV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주거 분양 광고의 과장성이 내포되었지만 아마도 처음에는 우리의 신도시들도 이런 상상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체로 겉 잡을 수 없는 광속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주거형식은 아파트 공화국이란 오명을 무시하고 굳세게 전진해 왔다. 전원, 계층혼합, 저층경관 등은 사라지고 어쩔 수 없는 속도전에서도 이를 수습할 대안들이 번창해 갔다. 이미 오래전 네델란드 하브라켄이란 건축가를 통해 고정-가변이란 자구식 주책 공급방식이 등장했었다. 어찌 보면 '유사한 공간 안의 다른 삶-같음과 다름'은 바로 하브라켄 자구식 주택의 발전적 진행형이라 하겠다. 이론은 주택의 고정부 뼈대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수요자가 완성하는 가변형인데, 비용과 시간은 다소 불리하지만 다름의 성취면에선 우수한 기발함이 들어 있는 것이다. 무량판 도미노를 피하고 다름을 추구한 건축은 전체의 높이를 낮추고 테라스와 지붕에 잔디를 씌우며 자연에 친화적인 친환경건축을 통해 건축안에 자연을 품는 내츄럴 사이딩의 수풀 형 조경 건축으로 대안을 삼기 시작했다. 많은 군소의 주거군락들이 취한 모습들은 여전히 땅과 용적률의 상관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수풀 형 조경 건축을 희망하지만 이웃과의 거리가 근접해 있고 공유의 방식에서 어려움을 지닌 것이 현실이다. 반면 도심의 일부 공유 주거가 공간을 나누기보다는 함께 쓴다는 숭고한 사고를 나름 불편 대신 행복으로 소유 대신 공유로 삶의 패턴을 바꾸어 버린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고도 있다. 같은 공간의 다른 삶, 긍정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주제라 본다. 우리의 많은 주거들이 키 높이기를 서슴지 않고 엄청난 주차장은 이미 지하로 거의 다 들여보내고 지상은 최대한 자연을 가깝게 두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유사한 형식 속에 다름의 생활은 그리 쉽지 않은 과제이고 이 과제는 자연을 껴안고자 하는 우리 미래의 도시 주거에 큰 과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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