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얼마 전 '아침단상'에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영화감독에 대해 썼는데, 그는 "문화는 외교의 종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지요.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문화를 이용하는 것을 외교라고 부른다면, 그런 것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 감독의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국익의 종이 된 문화'가 아니라 '국익에 도움을 주는 문화'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한 바 있습니다. 문화를 세계인과 공감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것을 인정하여도 그 예술의 오리지널리티 자체를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백남준과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소환한 것은 최근 베스트셀러로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라는 저서가 던진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박사가 집필한 것인데, 송 박사는 K-컬처에서 'K는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K-컬처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국내외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습니다. K-드라마, K-무비, K-팝 등 K-컬처가 뜨고 있는 것이지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수십억 건의 시청 횟수를 기록하여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그 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휩쓴 것을 비롯하여 '미나리'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오징어 게임'은 세계에서 1억이 넘는 가구가 시청하였고 에미상도 수상하였지요. 이뿐이겠습니까. BTS의 성공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상의 수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상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한 번 올리면 경제적 가치가 11억 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K-스타일을 입힌 제품들이 앞다투어 출시되고, 구찌나 루이비통 등을 비롯한 글로벌 럭셔리 산업의 중심 기업들도 K로 시작되는 스타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송 박사는 "K가 꼭 대한민국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K는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물리적 존재에 머무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K의 공간이 확장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한국에 살고 있는 법률적인 한국인, 다시 말해 교육과 생활을 이 땅에서 해 온 문화적, 생활 공동체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K를 선망하는 외국 연예인들이 K의 정서와 양식을 수용한다면 그것 자체가 K를 확장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K의 주무대는 대한민국이라는 물리적, 법률적 공간을 넘어 확장되는 더욱 적극적인 뜻입니다. K가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확장된 K는 오히려 더 큰 역량을 가질 수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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