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서울의 봄'이나 '노량: 죽음의 바다'는 굴곡진 한국사의 단면이 담긴 역사물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다룬 작품이다. 쿠테타로 서울의 봄이 찾아오지 않았음을 알리는 영화라고 한다면,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12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을 다룬 영화다. 어쩌면 임진왜란으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 전쟁을 종결짓는 승전기념일과 같은 역사적인 해전을 다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없는 씁쓸함이 존재한다. 그래서인가 영화제목에서부터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묘한 뉘앙스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지난날 경상남도 남해군을 지나다 노량대교를 가보았다. 1598년 노량해전이 펼쳐진 좁은 해협에서 나는 이순신 장군을 만났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해주소서.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이순신 장군의 절규를 들었다. 그의 말처럼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격퇴하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지난 10년간 명량,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한 김한민 감독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당신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인가요?' 그런데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국뽕으로 영화를 팔아먹지 않았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함에도 진정성 하나로 대작을 차례차례 완성한 감독이기에 그의 대답이 주는 의미가 비상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우리나라의 창세설화를 다룬 박제상의 '부도지'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문화, 복본(復本:하늘의 성품을 복원하는 의식)을 언급하면서 환웅과 단군, 고구려의 동맹, 조선의 제례의식까지 우리민족은 하늘을 숭배하고 그 뜻을 따랐던 민족임을 강조했다. 조선의 왕인 선조도 도읍을 버리고 도망가는 망국의 상황에서 이순신이 굳건히 나라를 지킨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DNA에 새겨진 하늘의 뜻'이 면면히 이어져 온 까닭이 아닐까 했다. 어쩌면 그는 영화 홍보를 둘러싼 국뽕 논란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으로 역사적 맥락에 기초한 애국심을 설명했지만 역사학계의 반발도 사고 있다. 한마디로 역사학계가 인정하지 않는 근거도 없는 위서를 들고나와 이순신의 애국심과 연결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의 애국심, 또는 본인의 관점을 그런 역사적 맥락까지 살피면서 들여다 봤다는데 오히려 한 표를 주고 싶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동란까지 겪은 민족이 반세기 만에 가장 밑바닥에서 세계 경제 10대 강국에 오른 저력에는 남다른 마력이 숨겨져 있음을 누구나 한 번쯤 믿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한국의 미래 국운을 이야기한 예언가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한국은 영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 점에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외세의 침입에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해를 끼치지 않는 우리민족이다. 복본의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지내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해온 우리민족이 영성국가로 우뚝 설 날을 믿는다.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