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또 있다. 여론을 떠보거나 여론을 통제하려는 취재원의 의도와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도 '알려졌다'가 사용된다. 가면 뒤에 숨은 익명의 취재원이 그의 뜻대로 여론을 주무를 수 있도록 언론이 공개적으로 마이크를 제공한 꼴이다. 저널리즘 전문가들은 익명의 취재원과 결합한 뉴스 문장의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의 해악은 게으른 언론으로 인한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생명수인 건전한 사회 여론의 형성과 공론의 활성화가 방해받고 악의적인 취재원과 언론에 의해 오염된 정보가 진실을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을 경계한 어떤 언론사는 그들의 취재보도준칙에 '~로 알려졌다/전해졌다/전망이다'를 기사 문장의 서술어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작년에 그 언론사의 법조기사 변화를 모니터링한 적이 있다. 구성원들이 작심하고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의 퇴출에 나서자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자리를 능동형 서술어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기사 문장을 능동형 서술어로 대체하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취재원의 발언을 전할 때 기사 문장의 서술어로 '따졌다', '항의했다', '촉구했다', '압박했다', '강변했다', '강조했다', '비난했다', '토로했다', '폭로했다', '반발했다', '종용했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저널리즘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러한 서술어 사용은 기자의 주관이나 판단이 개입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따라서 취재원의 발언을 전하는 인용문에서는 누구의 발언이든 일관되게 덤덤하고 건조한 '말했다'나 '밝혔다' 정도의 서술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말했다'라는 서술어가 기사의 품질뿐만 아니라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사 문장의 서술어 '알려졌다'와 '말했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그것보다 크다. 기사의 내용 구조가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발언의 주체를 드러냄으로써 해당 언론이 그 취재원과 언제, 어떻게 접촉해서 정보를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기사 내용에 포함된다. 발언 내용의 타당성을 점검하게 돼 오보를 줄이고 기사 품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언론이 발품을 팔아 공들여 취재했는지, 보도자료를 참조하는 데 그쳤는지 혹은 다른 언론의 기사를 베끼고도 아닌 척하는지 기사 문장의 서술어가 보여줄 수 있다. 쟁점을 두고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있을 경우 '말했다'의 기회를 취재 대상 모두에게 부여해야 하므로 기사에 각각의 반론까지 자연스레 반영되는 효과가 있다.
새해가 밝았다. 총선이 있다. 언론이 제공하는 선거정보의 품질에 따라 좋은 선거의 성패가 갈린다. 기사 문장의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를 발언의 주체가 드러나는 '말했다'라는 서술어로 바꾸어 쓰는 것은 공정하고 성공적인 선거보도를 달성하는 기초다. 기사의 단어 하나를 바꿔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올바른 민주주의를 향한 위대한 여정의 걸음걸음이다.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 측정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언론이 유권자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알려졌다'나 '전해졌다' 류의, 주체가 사라진 피동형 서술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유권자이자 독자로서 청룡의 해에 언론에 대해 꾸어보는 작은 꿈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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