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동굴 태평양전쟁 시설 유력…일본군 주둔 '대전史' 재조명

보문산 동굴 태평양전쟁 시설 유력…일본군 주둔 '대전史' 재조명

경성 이남 대구 제외 대전에 가장 큰 일본군 주둔
서대전역 일원 20만평 확보해 군사적 요충지 삼아
일제강점기 대전에 조성했을 전쟁시설 조사 '전무'

  • 승인 2023-12-31 15:31
  • 수정 2024-02-28 10:50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보병 제80연대 제3대대 전경(서울역사박물관 소장자료)
일제강점기 서대전역 인근에 주둔한 일본군 보병 제80연대 제3대대 전경.  (사진=조건 연구위원 논문 인용·서울역사박물관 소장자료)
대전 보문산 동굴 조성 때 일본군과 군속이 현장을 지휘했다는 증언이 나온 가운데 같은 시기 서대전역 인근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당시 경성 이남 지역에 대구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부대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대전주둔 일본군 부대를 목격한 주민은 지금의 서대전시민공원부터 충남대병원까지 일본군 부대와 훈련장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제주와 부산, 군산에서 일제가 남긴 태평양전쟁 유적 조사가 활발한 것처럼 대전에서도 새롭게 발견된 전쟁유적 추정 시설물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다.

31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달 들어 보문산에서 조성 시점을 특정할 수 없는 동굴 7개가 잇달아 발견됐다. 호동과 석교동의 동굴은 원형이 그대로 보전돼 바위를 거칠게 깎은 벽면과 화약 투입구로 여겨지는 구멍이 남아 있다. 또 굴착 과정에서 낙하물을 받쳤을 나무기둥과 기둥을 세우기 위해 벽면을 직각으로 다듬은 흔적 등이 발견됐다. 석교동에서는 벽돌로 입구가 막힌 동굴 3개가 10m 간격으로 잇달아 발견됐고, 동굴이 무너진 지점으로 보이는 움푹 팬 지형도 1곳 발견됐다. 이밖에도 입구가 무너지거나 입구에 주택이 들어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으나 여러 주민들이 동굴이 있다고 증언한 석교동 2곳까지 보문산에서 최소 7곳의 동굴이 최근까지 확인됐다.

대전 원로 기업인 박영규(96) 회장이 일제강점기 대전중학교 재학 때 대전비행장뿐만 아니라 보문산 동굴 조성 현장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근로동원되어 자갈을 날랐다는 증언을 내놨다. 그는 보문산 동굴 조성현장에 일본군과 군속이 있었다고 증언했고, 당시 물자가 달려 동굴을 만들고도 그 안에 숨길 게 없었다고 구체적으로 기억을 꺼냈다. 이를 통해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으로 대표되던 일제강점기에 남은 시설물 목록에 사실 확인을 거쳐 태평양전쟁 유적으로 보문산 동굴이 추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대전에 경성 이남 지역에 대구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부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조사돼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남긴 군사시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논문 '일제 말기 조선 주둔 일본군의 大田 주둔과 군사령부 이전 계획'에 따르면 조선 주둔 일본군의 주요 주둔지였던 경성과, 연대 본부가 자리했던 대구를 제외하면 남한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대가 위치한 곳이 대전이라고 분석했다. 조건 연구위원은 논문에서 "태평양전쟁 말기 이른바 본토결전의 일환으로 대전을 소련과 미군의 한반도 공격에 맞서 항전할 최후의 보루로 선택해 대전에 대규모 지하시설을 건설했다"라며 "대전 아쿠아리움이 자리한 지역이 일본군 사령부가 이전할 목적의 시설물로 보이고 일본군에 의해 건설되었던 지하시설을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군이 접수하여 훈련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서술했다.



또 이민성은 한국근현대사연구 논문 '1910년대 중반 조선 주둔 일본군 군영 배치계획과 軍營 유치운동의 양상'에서 "일본 육군은 1911년께 서대전역 인근에 이미 20만평(66만㎡)의 군용지를 확보하고 여단 혹은 연대병력을 배치하려고 계획했다"며 "거리상으로 군수품의 운송비 등을 고려한다면 부산과 가까운 대구가 대전보다 적당하다고 결론 내리고 보병 제74연대를 대구에 배치하고 대대를 대전에 주둔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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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문화동 진교만(90) 옹이 초등학생 때 대전에 주둔한 일본군영지에 대한 기억을 중도일보에 설명했다.  (사진=임병안 기자)
실제 대전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 군영지 인근에 거주한 지역 원로는 일본 군부대 규모가 상당히 컸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전 중구 문화동 한 경로당에서 만난 진교만(90)옹은 태평동에서 대흥동 대흥공립심상소학교(현 대흥초)까지 통학할 때 서대전역네거리에 있는 일본군 부대 앞을 오갔는데 서대전시민공원부터 충남대병원까지 부대가 넓었다고 기억했다. 진 옹은 "지금 홈플러스 뒷편에 부대 병영이 있었고 긴 총을 어깨에 맨 일본군이 근무를 섰는데 충남대병원 자리에는 사격훈련장이 있어 울타리 넘어 탄피를 주우러 가곤 했다"라며 "한번은 부대 내 나무에서 열매를 따다가 일본군에게 발각돼 구타를 당할 때 조선인 군인이 놓친 척 나를 놓아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태평양전쟁유적 일제조사 연구보고서(문화재청, 2015년)
문화재청이 2015년 진행한 태평양전쟁유적 일제조사에서 대전에서도 조사를 벌였으나 남은 유적은 찾지 못했다. 사진은 일본군 관사에 대해 조사에서 남은 시설물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는 대전에 경성과 대구 다음으로 큰 부대를 주둔시키고 태평양전쟁 말기 최후의 보루로 선택했다는 학설이 제기되나 문화재청이 2015년 수행한 '태평양전쟁유적 일제조사 연구보고서'에서는 대전에 남은 태평양전쟁유적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조사위원들은 서대전역 일본군 주둔지이었으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홈플러스 등으로 개발된 곳과 일본군 장교의 관사터로 추정되는 대흥동 일원을 조사했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대전시는 보문산에서 발견된 동굴에 대해 조만간 현황조사에 나설 방침으로 부서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주진 대전문화유산울림 이사는 "식장산 정상에 일본군 통신부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아래에 당시 조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방공호가 발견되는 등 태평양전쟁을 대비한 요새화는 대전에서도 이뤄졌다"라며 "마지막 보루 개념에서 우리지역에서 결전을 위해 조성한 시설은 여러 개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임병안·김지윤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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