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칠갑산 자락의 바닷말 순두부 |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절절한 이 노래는 60~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비록 고향이 청양이 아니더라도 금방 고향을 떠올릴 정도로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노래다.
이 노래 속에 담긴 화전을 일구어 심은 콩이 머릿속에 떠올라 이번 '맛있는 여행'은 칠갑산의 콩 요리를 소개하자는 생각으로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차를 몰고 신작로 길을 달려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재경청양향우회 윤종훈 회장에게 전화했다. 콩 요리 잘하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 카톡으로 본인의 단골 맛집 정보를 보내 준다.
필자의 고향 공주 우성을 거쳐 청양 정산방면으로 들어서니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산자락에 흰 눈이 쌓인 것이 겨울은 겨울대로 제법 운치가 있다.
칠갑산은 차령산맥에 속한 높이는 559.8m다. 비록 완만한 높이지만 충남 알프스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산이 높거나 험하지는 않지만 깊기 때문이다. 칠갑산(七甲山)이라는 산 이름은 만물생성의 7대 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이라 경칭해 왔다고 한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山)이라고도 전해진다.
백제는 일찍이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거행해 왔다고 한다. 칠갑산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백제의 얼이 담긴 천년사적지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인 장곡사(長谷寺)는 850년(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하였다. 1346년(충목왕 2)에 현재 보물 제337호로 지정된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봉안하였으며, 1407년(태종 7) 12월 2일에 조계종(曹溪宗) 소속의 명찰로서 자복사(資福寺)에 지정되었다. 1673년(현종 14)에 철학(哲學) 등 화승(畵僧)이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미륵불 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을 조성하고, 1777년(정조 1)에 상대웅전을 중수하여 「칠갑산장곡사금당중수기」를 지었으며, 1788년(정조 12) 11월 2일에 나라의 면세(免稅) 사찰로서 면세 결수(結數)를 늘려주었다.
장곡사 일대에는 군내 최대의 구기자(枸杞子) 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칠갑산정에 위치한 맑은 천장호수는 청양의 젖줄로 구기자, 콩 등 작물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환경 조건을 갖춘 곳이다. 칠갑산 노래에 나오듯 정산면 역촌리에 '칠갑산 콩 생산단지'가 조성될 정도로 수년 전부터 콩 재배를 통한 농가소득에 열정을 다했던 곳이다.
천장 호수 |
윤종훈 회장이 소개한 콩 요리를 잘하는 집 '바닷물 손두부'(충남 청양군 대치면 한티고개길 1)를 찾았다. 청국장 백반과 두부를 시켰다.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청국장 맛이 여느 집 청국장과 전혀 다른 맛이다. 국(羹)인 듯 심심한 것이 버섯 맛이 잘 어울리고 구수하다.
필자는 청국장에 밥을 비벼 볼 요량으로 비빔 할 그릇을 요청하니 참기름과 함께 비빔그릇을 가져다준다. 짜지 않고 심심한 맛 때문에 굳이 밥반찬이 아니더라도 청국장 그 자체만 먹어도 좋을 듯싶었다.
청국장 백반 |
19세기 학자 이규경(李圭景 : 1788∼1863)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전국장(戰國醬)`이 네 번 등장하는데, `시`를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장이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청국장은 전시장, 전국장,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됐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는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 지어 의미하게 돼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淸國醬)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들이 말안장에 삶은 콩을 싣고 다니다 발효해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하고 있으며 청국장(淸國醬)은 중국 청나라 장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병자호란은 1636년부터 1년간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했던 전쟁이다.
그러나 이런 설은 근거가 희박한 설이다. 병자호란보다 100여 년 앞서 발간된, 1527년 최세진(崔世珍 : 1473∼1542)의 『훈몽자회(訓蒙字會)』를 보면 `시`를 `쳔국`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간(金幹 : 1646∼1732)이 1766년에 쓴 시문집 『후재집(厚齋集)』에도 `전국장(戰國醬)은 칠웅전쟁(七雄戰爭) 때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적혀 있다. 청국장이 전쟁용 음식이란 속설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다. 조선 숙종 때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펴낸 『연행일기(燕行日記)』 제4권 / 계사년(1713, 숙종 39) 1월 26일 북경에 사는 박득인의 집 주안상에 `청국장도 맛이 역시 좋은데 대개 우리나라의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나온다. 이때가 청나라 때인데, 북경에서 먹은 청국장이 우리나라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더라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
청국장 |
다시 '바닷물 손두부' 집 두부 이야기로 돌아가자. 손 두부집이니 두부도 함께 시켜 봤다. 접시에 세 가지 두부가 예쁘게 담겨 나왔다.
우선 청양의 특산물 중 하나인 구기자 두부와 서리태 두부, 그리고 일반 두부가 돼지 수육과 함께 나왔다. 이 집의 손두부는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한다고 한다. 두부 맛이 제법 부드럽고 구수하다.
구기자 두부, 서리태 두부, 일반두부, 돼지 수육이 담겼다 |
"菜羹無味久(채갱무미구: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국만 먹다 보니) 豆腐截肪新(두부절방신: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便見宜疏齒(변견의소치: 성긴 이로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眞堪養老身(진감양노신: 늙은 몸을 참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 魚蓴思越客(어순사월객: 오월의 객은 농어와 순채를 생각하고) 羊酪想胡人(양락상호인: 오랑캐 사람들의 머리 속엔 양락인데) 我土斯爲美(아토사위미: 이 땅에선 이것을 귀하게 여기나니) 皇天善育民(황천선육민: 황천이 생민을 잘 기른다 하리로다)"이라고 했다.
이 시(詩)에서 오랑캐 사람들 즉 중국인들이 머릿속에 항상 생각할 만큼 좋아하는 것은 양락(羊酪)이라 했는데, 양락(羊酪)은 치즈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두부(豆腐)라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두부(豆腐)는 우리의 고유한 음식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성소(惺所) 허균(許筠)이 편찬한 시문집 성소부부고한정록 제16권 치농(治農)에 보면 '대두(大豆)를 3~4월에 심고서 호미로 잡초를 말끔히 제거한다. 이 콩은 장(醬)을 담글 수 있고 두부(豆腐)를 만들 수 있으며, 그 껍데기는 말[馬]을 먹이기에 좋다.'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두부를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이 간수다. 간수를 고염(苦鹽)·노수라고도 한다. 소금을 제조할 때 부산물로서 얻을 수 있고, 또 조염(粗鹽)을 저장할 때, 그 조해작용(潮解作用)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는 간수는 소금을 석출할 때 남는 모액으로 간수가 응결되어 생긴 염화마그네슘 등의 무색 결정체로 유리 같은 광택이 있고 습기를 흡수하면 용해되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바닷물의 오염으로 천연 간수는 식약청에서 식품위생법상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식품공업협회에서 발행한 식품공전, 식품첨가물공전 어디를 찾아봐도 '간수'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간수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염화마그네슘을 따로 분리한 것이 현재 식품첨가물로 허가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바닷물 손 두부는 기본수준면으로부터 200m 아래의 바다에서 취수한 해양심층수(海洋深層水)를 사용하는데, 해양심층수라는 바닷물을 인공적인 처리를 통하여 사람이 음용 가능하게 만든 먹는 해양심층수를 사용해 고소하고 부드러운 전통 두부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바닷물 손두부 집의 청국장과 손두부는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건강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는 칠갑산의 맛집이라 할 것이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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