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안티프래질’ 시대의 정책으로 90%와 10%를 섞는 ‘바벨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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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안티프래질’ 시대의 정책으로 90%와 10%를 섞는 ‘바벨 전략’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 승인 2023-12-20 08:45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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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필 교수
한겨울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것도 세상 태어나 처음인 것 같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이 이름만 남았지, 도대체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기후변화가 학자들의 이야기나 정치인들의 공방 이슈가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계절마다 느끼게 된다. 한겨울에 춥지 않으니 난방비가 적게 들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여름의 더위에 에어컨 전기료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기도 했다. 새만금에서 잼버리가 'K팝은 일류, 행정은 삼류'라고 요약되는 참사가 돼버린 건 어찌 됐든 폭염으로부터 시작됐다. 통제 불가능한 산불이 수시로 있었고 곳곳에서 물난리에 오송 참사와 같은 인명피해도 여러 건 있었다.

저출생 고령화로 요약되는 인구 변화는 이제 인구소멸, 민족소멸, 국가소멸 등과 같이 소멸이라는 말에 내놓고 연결하고 있다. AI의 확산으로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고 하지만, 번듯한 일자리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물가는 오르고 급여는 제자리지만, 그나마 일할 곳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무질서한 현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무질서하고 다양한 모양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비선형적이고 비대칭적 변화 등 복잡계적 현상이 일상화된 오늘날의 모습이 바로 '안티프래질(anti-fragile)'을 이야기하는 배경이다. 모든 확실한 것이 희미해져 가고 견고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으며 내일은 오늘과 분명히 다르지만, 더 나쁘게 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만 전해진다. 뭔가 노력을 해도 되는 일은 없고 문제만 커지는 상황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나마 문제가 적어진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워 살아가려는 태도가 적합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튼튼한 방어막을 쌓아 철저히 방어하려는 노력도 소용이 없을 수 있다. 오히려 이사할 때 유리인 도자기 혹은 귀중품이 파손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과 같이 '안티프래질'한 스타일을 추구하라고 귀띔한다.



정부 정책에도 평균에 기초한 정책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균형발전 정책이나 복지정책 모두 평균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즉, 전국 평균에 이르지 못하는 지역이 균형발전 정책의 대상 지역이고, 평균적 삶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하자는 것이 복지정책의 기본적 접근이다.

문제는 이렇게 접근할 때 평균의 측면에서 지역 간 격차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지역에서의 복지가 나아지지는 못하며 반대로 취약계층의 복지가 향상된다고 지역 간 균형발전이 촉진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역의 성장이 거기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을 똑같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내부의 빈부 격차가 심화한다면 지역의 성장이 특정 계층의 삶의 질을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더욱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 계층은 지역발전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지역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부닥쳐 있을 수 있다. 지역발전에서 실질적인 사회 분배적 효과가 어떨지를 지역 차원에서 명확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지역발전의 사회 분배적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균질적 공간으로 바라보고 거시적·평균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지역 내부의 계층적 차별성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 부, 신체적 조건, 성별, 나이, 국적 등 사회적 기준에 따른 다양한 계층 간에 지역발전의 효과가 어떻게 차별적으로 배분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빈곤층, 장애인, 여성, 청년층, 외국인 노동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주목해서 관찰하지 않으면 문제를 제대로 치유하기 어렵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균형발전이냐 사회복지냐는 이분법적 선택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균형발전도 추구하고 사회복지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동시에 추구할 때 또다시 평균에 기반한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라는 말도 아니다. 기존의 균형발전과 복지정책에 90% 정도의 노력을 투입한다면 나머지 10% 정도는 매우 극단적으로 다른 접근을 취하라는 제언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전략적 발전정책에도 10% 정도는 투자해야 예상치 못한 정책 성과를 거둘 수도 있는 여지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대로 가장 취약한 지역의 취약한 계층을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100% 복지보장 등을 해보는 것도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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