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
그동안 서울에서 제주까지 18개의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저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제1기 위원회의 성과라면 주민들의 다양한 치안 수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과 방방곡곡에 대한민국 경찰을 염려하고 성원하는 분들이 훌쩍 늘었다는 점이다. 특히 전문성과 경륜을 갖춘 지역 인사들을 대거 시·도자치경찰위원으로 영입하면서 경찰에 관한 관심과 이해가 높은 사회지도층을 늘려나가게 된 것은 대한민국 경찰의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경찰법'은 시·도자치경찰위원회와 더불어 국가경찰위원회도 규정하고 있다. 곧 대통령은 제12기 국가경찰위원회를 구성할 신임 위원들을 임명할 것이다. 국가경찰위원회는 1991년 대한민국 경찰이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하면서 함께 출발했다. 당시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경찰에게 정치적 중립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라는 온 국민의 여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경찰위원회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적 위상에 있어서 국가경찰위원회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서 국가수사본부의 권한도 크게 강화됐다. 동시에 국가수사본부장은 임기가 끝나면 당연히 퇴직하도록 하여 경찰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극약 처방을 썼다. 하지만 유독 국가경찰위원회 위상만은 30년 세월 속에 그대로 묶어 두었다. '경찰법' 개정 논의 당시에도 "국가경찰위원회 규정을 한자라도 건들면 자치경찰제 도입은 없다"라는 으름장이 들릴 정도였다. 7명의 위원 가운데 정작 위원장은 비상임이며 1명뿐인 상임위원마저도 그동안 치안정감 계급의 고위직 경찰공무원 출신으로만 임명해 왔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사무를 지원하는 사무기구조차도 없다. 30년 동안 주로 경찰청이 올린 안건을 수동적으로 심의·의결하는 선에 머물렀고, 한 달에 2번만 하는 정기회의로는 밀려드는 경찰업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위원구성 방식의 취약성으로 인해 집권 세력이 바뀔 때마다 위원의 당파성 논란에 휘말려 그 제도적 취지에 맞는 운영이 어려워지기도 했는데,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와 관련된 논란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이제 수사 기능과 안보 기능 등에서 경찰권이 크게 확장된 만큼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국가경찰위원 후보군 구성에 있어서 관계 장관의 제청에만 머물지 않고 추천권자의 다변화를 통한 민주성 강화가 절실해졌다.
이에 비해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사무국을 두어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위원장과 사무국장 2명이 상임(常任)이며 위원 선임에서도 시·도지사는 물론 지방의회와 교육감 등 다양한 주체가 추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경찰위원회를 개혁할 차례다. 최소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정도의 법적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임위원의 숫자도 2인 이상으로 늘리고 위원회 구성에서도 대통령은 물론 국회 등 다양한 위원 추천권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대한민국 경찰임에도 정치 지형도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책집행과 인사 난맥으로 인해 국민의 비난을 감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바로 선다. 국정운영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경찰의 존재감은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는 경찰 운영은 국가적 손실이자 우리 국민의 피해가 된다. 이번에는 국가경찰위원회를 바로 세워야 한다. 공정과 상식에 맞는 공권력 행사로 범죄와 재난 없는 나라 만들기에 전념하는 경찰관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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