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프로축구 최대의 화두는 우승팀 울산이 아닌 수원 삼성이다.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기사회생한 수원은 이번 시즌 내내 부진의 늪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 최하위로 2부 리그로 탈락했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수원의 강등을 예측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K리그에서 들어 올린 우승컵만 4번에 FA컵 우승 5회,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고 매 경기 수천 명의 서포터들이 골대 뒤를 푸는 물결로 수놓았던 K리그의 대표 구단이 2부 리그로 내려간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수원 팬들은 물론 K리그 관계자들도 충격에 빠졌다.
언론에 입문하기 전부터 K리그 팬이었던 기자의 기억에도 수원은 부러움의 상징이었다.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원과 스타플레이어 열정적인 팬들을 보유했던 수원은 가난한 시민구단 대전을 응원했던 기자에게 대전-수원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일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대전이 갖지 못한 모든 것을 최상급으로 갖춘 수원을 이길 때면 대전팬들은 리그 우승에 버금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대전-수원전에는 사건 사고도 따라다녔다. 팬들끼리 충돌은 다반사였고 두 팀이 만나는 날 경기장에는 경찰 수백 긴장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대전은 수원을 만나면 '투르크의 전사'가 됐다. 몸을 날려 덤벼드는 대전의 플레이에 수원은 당황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대전이 두 번째로 강등당했던 2016년까지 대전-수원전은 아시아 최고의 슈퍼매치라 불렸던 서울-수원전에 버금갈 정도로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렀다. 1부 리그로 돌아와서 본 수원의 모습은 예전과 아주 달랐다. 수원을 상대하는 대전 팬들의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았으나 수원은 더는 그들이 아니었다. 가난한 시민구단이었던 대전은 '재벌 집 막내아들'로 돌아왔지만, 수원은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초라한 전사로 전락해 있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수원이 다시 1부 리그로 올라오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명가의 부활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열정스토리를 가급적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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