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버그(bug)를 사전에서 찾으면 벌레,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에서 난 오류를 뜻한다. 오래전 학교에서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프로그램을 짜면 중앙컴퓨터에서 천공한 카드와 결과를 받았다. 신기했다. 직장에서는 PC의 시대였다. 90년대만 해도 포트란으로 작성된 프로그램의 실행파일을 돌리다가 에러가 나면 소스 파일을 분석해서 버그를 찾아 제거했다. 사무실에서 업무로 쓰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대개 학습용이거나 데모 버전이라 가능했다.
디지털 정보화의 거센 물결이 일상을 휩쓸고 있다. 한두 해 전만 해도 음식점 같은 곳에 설치되던 '키오스크'가 커피숍 고속도로 휴게소 등 사방에 쫙 깔렸다. 제품마다 사양이 다르고, 숙달되지 않아 버벅거리면 어느새 시간 지체가 생긴다. 직원은 손님 대접이 아닌 버그를 잡아내듯 '이리 오세요' 한다. 내 돈 내고도 맘 편히 못 사 먹는 세상이다.
일 처리 방식도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바뀌고 있다. 영화 철도 버스 승차권 항공권 예매가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뀌고 있으며 유인 점포가 줄어들고 있다. 디지털 정서와 적응력을 수치화한 디지털 지수(digital quotient)가 낮고 대면 방식에 익숙한 노인 세대들은 점점 디지털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챗-GPT까지 등장하여 세상을 흔드니 막막할 뿐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따라가자니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흐릿하여 어렵다. 힘들다고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도 없다. 우리는 어쩌면 정보화에 기대어 얻는 편리와 효율을 얻는 대가로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알고리즘에 빼앗기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에서는 이런 흐름에서 소외되거나 늦은 이들을 위한 대책도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는 있다,
한국은 생산가능인구를 벗어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내년 천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65세가 되면 복지혜택이 많다. 지하철 국립미술관·박물관 등이 공짜고 버스·열차·여객 요금, 공연료와 관람료가 할인된다. 지금 받는 복지혜택이나 노령연금은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데 저출산의 여파로 세대 간의 갈등이 두드러질 개연성이 아주 높다. 그런 점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 사회의 문제를 다룬 영화 '플랜75'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75세 이상 노인들을 연금 벌레로 간주하여 안락사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고 있다. 공상 속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세대 간 이익을 다투지 않고 각각의 역할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 지금 노인인구에 진입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속도에 뒤처질지는 몰라도 경험을 기반으로 남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젊은 노인(Young Old)이다. 그들이 사회의 버그로 전락하지 않도록 배움의 문을 열어놓는 한편, 배달 청소 돌봄 안전 조사 농업 등 분야에서 일자리의 기회를 공유하면 좋을 것이다.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의로운 일과 장학사업에 쏟은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TV로 보았다. 부와 권력 명예에 함몰되지 않은 자유의 정신으로 어른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감명 깊었다. 앞선 세대는 뒷선 세대들이 힘차게 이어갈 수 있도록 적어도 짐은 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자기만의 가치로 적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버그가 아닌 어른으로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일 테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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