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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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3-12-1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최근 '제3회 만나뮤직콘서트'에 다녀왔다. 소프라노 김혜숙(만나뮤직)대표 초대를 받고 갔는데 콘서트홀 내 크리마스트리를 보니 어느새 한해의 끝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소프라노 김혜숙은 충남대학교 대학원 음악과 졸업, 이탈리아음악협회 콩쿠르 입상, 함께하는 교회 지휘자, 하늘꿈교실 어린이합창 지도를 맡고 있다. 만나뮤직은 '만나뮤직창단연주회'(2023년 4월 15일)를 시작으로, 지난주 제3회 정기연주회를 하였다.

만나뮤직은 음악을 전공한 열정 있는 사람들에게 연주 기회를 주고 끊임없는 음악 활동을 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양한 컨셉과, 다양한 공간에서 연주함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며 미소 지었다.

제3회 만나뮤직콘서트는 오페라 아리아를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Think of me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Somewhere Over the rainbows, My way,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한국 가곡으로는 마중, 별을 캐는 밤, 수선화, 첫사랑, 마지막 곡으로 The Maine Stein Song(우정의 노래)를 출연자 다 같이 불렀다.



리셉션은 주체 측에서 준비한 떡과 차, 과일 등을 먹으며 출연자와 관람객이 함께 담소를 나누는데 보너스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12월은 성탄절이다, 연말이다 해서 한껏 분주하면서도 한편 마음 한구석은 왠지 허전함 때문에 한시도 편치 않았던 것 같다. 눈이 올 것만 같은 잿빛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가도, 막상 생각해 보려면 이렇다 하게 생각나는 사람은 딱히 없다.

그럴 때 나는 공연장을 찾았다. 주로 오페라, 연극, 발레, 뮤지컬 등을 관람하지만, 그중 12월에 빼놓지 않고 보는 것은 발레 '호두까기인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2003 라보엠'은 벌써 20년 전에 봤지만, 근래에 본 것처럼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만큼 감정이입이 잘되었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무대는 함박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객석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알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을 원작으로 한 푸치니의 네 번째 오페라 '2003 라보엠' 막이 올랐다.

1830년 파리. 싸구려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여공 미미와 시인 로돌포와의 슬픈 사랑을 주제로 젊은 파리지앙들의 우정과 사랑을 부제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삶에 지친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며 유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원형무대엔 흩날리는 눈이 오색 가지로 빛나는 조명과 더불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페라 전편을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 때문인지 원형무대는 실제 샹젤리제 거리보다도 더욱 감동적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네온사인이 아름답게 빛나는 샹젤리제 거리를 걷던 적이 있었다. 허나 그때는 그저 거리 풍경이었을 뿐 이토록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아니, 아름답기는커녕 너무도 추웠다. 털외투를 입었는데도 옷깃 사이로 스며들던 차고 습한 바람은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 매서웠다.

어렵사리 찾아 들어간 거리 모퉁이 카페는 또 어떠했던가. 마치 굴뚝에서 연기가 쏟아지듯 담배 연기로 자욱해서 숨도 쉴 수조차 없는 데다가, 발아래는 담배꽁초가 가득해서 어디 한군데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작은 카페는 좀 늦은 시간이어선지 앉을 자리도 없었다.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지도 못한 채 그 추운 황무지 벌판으로 다시 내쳐졌을 때, 추위와 외로움이 범벅이 되어 몸서리 쳐지던 샹젤리제거리였다. 그런데 원형무대에 올려진 눈 내리는 샹젤리제 거리는 아름다웠다.

젊은 시인 로돌포는 폐병을 앓고 있는 여공 미미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지만, 둘은 너무도 가난하여 함께 살 수 없게 되고, 미미는 돈 많은 귀족 노인에게 생계를 의탁하게 된다. 병이 악화된 그녀는 끝내 로돌포를 잊지 못하고 빈사 상태에 이르러 로돌포에게 돌아온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열창 때문인지 한겨울인데도 무대는 뜨거웠다.

어느덧 관객들의 가슴에도 눈이 내렸다. 캄캄한 관람석은 장막이 쳐진 듯 숨소리 하나 나지 않은 채 엄숙했다. 내 가슴에도 눈이 내렸다. 흰 눈은 가슴이고 눈두덩이고 간에 마구 흩날렸다. 나는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막연하지만 내 안에 그 무엇인가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느껴서였다. 그 그리움의 끝은 어디였을까.

'2003 라보엠'은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편의 아름답고 따듯한 사랑의 감동이었다. 물론 그 후 여러 오페라단의 '라보엠' 공연을 관람했지만, 유독 그때가 특별했던 건 그 당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라보엠 공연은 국내 최초로 원형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준 최정상급 무대로 평가받았다, 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산란해진 마음을 다독이는 데는 음악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올해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하고 싶다. 누군가 다가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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