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파고든 동굴, 누가 왜?]
3. 일제 방공호, 짙은 그림자
대전 중구 호동의 또다른 동굴이 하늘을 향해 입구가 놓여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무릎 높이부터 사람 머리에 닿을 위치까지 동굴 끝 벽면에 30~40㎝ 간격으로 고르게 뚫려 있었는데 동굴의 다른 벽면에서는 볼 수 없는 흔적이었다. 구멍에 화약을 넣어 금방이라도 터트릴 시점에 작업이 돌연 중단되고 근로자들은 사라진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곳을 왜 만들려고 했을까?
대전 보문산에 최근까지 발견된 동굴 5개를 굴착한 때로 가장 유력하게 제시되는 시기는 1944~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을 앞둔 일제 강점기 말기다. 제주와 부산, 군산 일원에서 항공기 폭격을 방어하고 전쟁물자를 숨기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방공호가 여럿 발견되었는데 보문산의 동굴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북 군산대 교정에서 지난해 동굴 6개가 발견됐는데 일제강점기 일본군 무기고로 추정되며, 광주에서도 2021년 5·18역사공원 터에서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 추정 지하시설이 발견된 것을 비롯해 2013년 유류저장고와 2021년 군 시설 추정 동굴이 여럿 나왔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미군의 한반도 공습과 상륙에 대비해 1944년부터 제주와 부산, 군산 등의 군사전략상 중요 지역에 동굴과 진지, 탄약고, 격납고를 만들어 군사 요새화를 한 바 있다. 다만, 대전에서는 일제강점기 동굴과 진지 등이 공식 보고된 사례가 없어 2015년 문화재청 태평양전쟁 유적 일제조사 때도 대전에 일본군 주둔지터 3곳만 보고됐다.
특히, 조성 시점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현재 아쿠아리움 관람시설로 사용 중인 옛 충무시설과 같은 시점에 조성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옛 충무시설의 대형 동굴은 내부 길이가 220m에 이르고 총면적 6000㎡의 U자형태의 지하 공간으로 한때 을지연습 육군전술지휘소로 사용됐으나 조성 주체와 시점을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 말기 총독부 관료를 역임한 인물이 조선 주둔 제17방면군 일본 참모의 말을 인용해 남긴 "남조선이 전장이 될 때 군사령부는 대전으로 전진하는데, 그때 쓰고자 대전공원 중에 대규모 방공호를 파고 종전 시는 회칠만 되어 있었다"라는 기록의 방공호가 옛 충무시설의 동굴을 의미한다는 해석 정도가 최근까지 연구다. 결전을 위한 지하 총사령부를 대전에 위치하려 대규모 지하시설을 조성했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논문으로도 발표되었으나 그동안 주변에 관련 부대시설이 발견되지 않아 미완의 연구과제였다.
대전 호동 동굴 입구에서 10m 떨어진 지점에 일본군 화약고로 알려진 시설물이 보인다. (사진=임병안 기자) |
조건 연구위원은 "관람시설로 쓰이는 옛 충무시설의 벽면을 관찰했을 때 콘크리트조를 쌓은 방식이 일본군이 다른 곳에 구축했던 지하시설물과 유사한 것을 확인했으나 마감재를 덧칠해 놓은 탓에 정확한 판정은 어려웠다"라며 "보문산에서 새롭게 발견된 동굴이 옛 충무시설과 관련 있는지 충분히 조사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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