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리의 실제 기원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의 칼날이 약 25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에 의해 인도 아대륙으로 운반된 고대 그리스 코피스의 변형된 형태로 전해진다.
쿠쿠리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데는 구르카족이 한몫했다.
수년 심지어 수 세기 동안 칼날의 형태는 세상에 잠들어 있었고, 인도와 네팔에서만 살아있었다.
구르카는 세계 최고의 용병이었고, 그들의 명성 중 일부가 '쿠쿠리'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됐다.
'구르카(Gurkhas)'와 '쿠쿠리(Khukuri)'는 동의어이다.
구르카가 없는 쿠쿠리와 쿠쿠리가 없는 구르카는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전설적인 무기를 사용해 구르카의 대왕 프리티비 나라연 샤는 통일에 나서 22~24개의 소규모 국가를 '네팔'로 합병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쿠쿠리가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된 사건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탈리아가 군인들을 포로로 가두었던 전쟁 당시, 구르카족은 쿠쿠리를 가지고 그들의 영토에서 군인들을 구출했다.
기관총과 같은 현대적인 무기가 주요 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쿠쿠리는 세계 대전 중에도 여전히 중요한 무기로 널리 사용됐다.
영국 구르카군·싱가포르군·바레인군이 지금까지 여전히 쿠쿠리를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네팔인에게 쿠쿠리는 강인한 정신·명예·정의·인간 존엄성·자유 등 무형의 특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쿠쿠리는 국가적 자부심의 영광, 전투에서의 용맹, 용감한 구르카족이 지킨 영광스러운 역사와 함께 성공의 휘장이다. 세종= 이소니 명예 기자(네팔)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