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이런 장면을 지켜보면서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하는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기적 인간' 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어느 사상가의 주장에서 작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인류 문명의 역사를 탐구해 온, '지금 유럽에서 가장 주목 받는 사상가'로 알려진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선한 본성'에 압도되어 왔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브레흐만은 독일의 '영국 대공습'을 소환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348대의 독일 폭격기가 영국 해협을 횡단하면서 '영국 대공습'이 시작되었는데, 9개월에 걸쳐 런던 지역에만 8만 개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100만 채의 건물이 파손되었으며 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 자체가 엄청난 재앙이지만, 그는 대공습에 대한 설명에서 "영국인들은 기이하게도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관찰자들의 증언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백만 명이 정신적 충격의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우려하였는데,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환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슬픔과 분노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정신병동은 비어있었고 오히려 대중의 정신건강이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영국 사회는 많은 면에서 대공습으로 인해 강해졌다. 히틀러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브레흐만은 "폭격을 가할수록 문명의 껍데기는 점점 두꺼워졌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요.
브레흐만은 위와 같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와 함께 '사격을 거부하는 병사들'이라는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즉 전투에서 병사들은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임에도 80퍼센트 이상이 "전쟁의 의무를 거부하고 총을 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이 없어서도, 무서워서도 아니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이라는 것이지요.
브레흐만은 대령 출신으로 역사학자인 새뮤얼 마셜의 연구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총을 쏩니다. 그러나 새뮤얼 마셜 대령이 태평양과 이후 유럽 전선에서 군인 집단을 계속 인터뷰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병사 중 15퍼센트에서 25퍼센트 만이 실제로 사용하고", "장교가 감시하고 있을 때만 총을 쏜다"라는 것입니다. 마셜은 "300명이 넘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대대(大隊)에서 실제로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36명 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 게티즈버그 전투에서도, 프랑스 군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한 명백한 결론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적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얼마나 악독하면 이런 전쟁을 일으키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쟁은 카리스마를 가진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일부 엘리트들의 도움을 받아 정략적으로 자행하고 있으나, 인간의 선한 본성의 대서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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