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욱 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
슈퍼컴퓨팅 컨퍼런스의 백미는 슈퍼컴퓨터 톱500 순위 발표다. 2019년 5월 10일 자 필자의 '슈퍼컴퓨터계의 빌보드, 톱500 순위의 기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1993년에 시작한 매년 2회 발표하는 톱500 순위의 역사와 의의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톱500 순위에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프론티어가 1위를 차지해 2022년 6월 이후 2년 연속 1위를 지켰다. 톱10순위 내 변동이 눈길을 끈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ANL)의 오로라(Aurora)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이글(Eagle)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는 등 4개의 시스템이 새롭게 진입했다. 핀란드 국영기업 CSC의 루미(Lumi)는 성능을 업그레이드했지만 3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2021-22년에 EU고성능컴퓨팅공동사업(EuroHPC)에서 투자한 루미를 비롯한 EuroHPC 슈퍼컴 3개도 톱10내에 보인다.
그 동안 우여곡절 많던 오로라가 마침내 2위에 진입했다. 오로라는 2015년 미국의 ANL과 HPE(당시 크레이사)가 공동으로 인텔 차세대 제온파이 프로세서 기반에 180페타플롭스 성능을 목표로 2018년에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텔 GPU칩 기반의 세계 최초 엑사스케일 성능을 목표로 2021년에 구축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이번에 엑사의 절반 수준인 585 페타플롭스 성능으로 세상에 나왔다. 오로라는 전체 노드의 절반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개발 지연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2024년에는 프로티어를 제치고 슈퍼컴퓨터 왕좌에 오를지 궁금하다.
MS 애저 클라우드 시스템용으로 자체 제작한 이글이 3위에 오른 것이 흥미롭다. MS는 2021년 6월에 애저 클라우드로 자체 제작한 시스템 4개를 톱500 순위 26위부터 29위까지 나란히 등재했다. 당시 MS의 데이터센터 범용 클라우드 시스템을 슈퍼컴퓨터 톱500 순위 20위권에 등재했다는 사실이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 MS 애저 클라우드 이글의 3위 진입을 계기로 ANL의 오로라 시스템 개발 사례에서 보듯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최첨단 슈퍼컴퓨터 개발 경쟁에 사기업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대형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AI 시대에 기업체도 AI 슈퍼컴퓨팅 인프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이번에 12개의 이름을 올려서 슈퍼컴퓨터 보유 및 성능 기준으로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서 세계 8위를 차지했다. 네이버의 세종이 22위에 새롭게 진입했다. 삼성종기원의 SSC-21, 기상청의 그루와 마루, SK텔리콤의 타이탄이 차례로 28위, 47위, 48위, 59위를 차지했다. 2018년 6월에 11위로 진입했던 KISTI의 국가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은 61위로 밀렸다.
세계 8위 한국 슈퍼컴퓨팅의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심각하다. 미국, EU 등 슈퍼컴퓨팅 강국들은 자국의 산학연 연구자의 혁신적인 AI연구에 필수적인 톱10위 내의 공공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영국 정부도 11월 초에 225백만 파운드(약 3677억 원) 예산으로 브리스톨대학에 2024년 여름 목표 200페타플롭스 AI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유일의 공공슈퍼컴퓨팅 자원인 KISTI 누리온은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챗GPT발 GPU 가격 상승으로 2929억 원 예산의 600페타플롭스급 국가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 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다. 우리도 영국 사례처럼 2024년 목표로 세계 10위 내 AI 슈퍼컴퓨터 6호기의 신속한 구축을 위해 담당기관인 KISTI, 담당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황순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