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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4번째 공매도 금지= 공매도 제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전략이다. 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되는 기법으로, 향후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싼값에 사 결제일 안에 주식대여자(보유자)에게 돌려주는 방법으로 시세차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공매도는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시장 질서를 교란 시키고 불공정거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지난 3일 여당을 통해 공매도 전면 금지 추진 발언이 나온 후 이틀 만에 금융당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공매도 금지는 이번이 역대 4번째다.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는데, 내년 6월까지 모든 공매도를 금지하기로 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공매도 투자에서 유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는 개인 투자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국내 공매도 시장에서 개인 대 기관·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2대 98 수준이다. 공매도 금지와 주가 간 상관관계는 없다. 2008년 금융 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과거에도 3차례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지만 주가는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했다. 1400만 개인 투자자의 여론에 밀려 '공매도 금지'를 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과 외국인 투자 엇갈려=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지 2주 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3조 원 가까이 팔아치운 반면 외국인투자가들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특히 반도체와 2차전지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엇갈렸다. 지난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6일부터 17일까지 국내 주식 2조9044억 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들은 삼성전자(―1조9302억 원), SK하이닉스(―2413억 원) 등 반도체주를 대거 팔면서, 2차전지 관련주인 POSCO홀딩스(+3041억 원), 포스코퓨처엠(+2536억 원), 에코프로머티(+2378억 원) 등을 사들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2차 전지 실적이 좋지 않지만, 향후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 투자자와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반도체를 선택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2조7775억 원어치 사들였는데 순매수액의 66%가량이 삼성전자(+1조3895억 원), SK하이닉스(+3416억 원) 등 반도체 관련주였다. 반면 POSCO홀딩스(―2829억 원), 포스코퓨처엠(―2383억 원) 등 2차전지주는 매도했다. 외국인 순매도 상위 10개 종목 중 8개가 2차전지 관련주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인해 국내 관련 주식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반면 2차 전지는 확신이 들지 않고, 전기차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둔화하고 관련 기업의 투자 계획이 불투명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기에 바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자= 공매도 세력과 전면전을 선포한 금융감독원은 올해 무차입 공매도 33건을 적발해 과태료·과징금 105억원을 부과했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민·당·정 협의회에서 금감원은 올해 무차입 공매도 62건을 조사해 33건에 대해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고 보고했다. 나머지 29건은 조사·제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조치 완료한 33건 중 과징금 도입 전 과태료 11억2000만원을 부여한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2건에는 과징금 93억8000만원이 부과됐다. 특히 올해 3월 외국계 금융투자회사 2개사가 과징금 60억5000만원을 부과받은 것을 시작으로 공매도 위반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제재하고 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그동안 시장에서 의혹으로 제기됐던 악의적인 무차입 공매도 사례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관행적인 불법공매도 행위 등에 대한 제재도 예고된 상태다. 금감원은 현재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공매도가 부분 재개된 2021년 5월 이후 거래에 대해 전수조사 중이다. 글로벌 IB로부터 주문을 수탁받는 국내 증권회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금감원은 이들 증권사의 공매도 주문 수탁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서도 점검한다. 공매도 주문수탁 프로세스, 불법 공매도 주문 인지 가능 여부 등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 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개선방향 민당정 협의회 후 "시장조성자·유동성공급자(의 공매도 금지 여부) 관련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점검하되 실태가 어떤지 사실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며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이달 중으로 지난 공매도 금지 이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계획이며, 국민들께 설명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할지 말지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에서 "공매도 거래 제약이 있는 개인에게 기관보다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중도 상환 요구가 있는 기관의 대차 거래에 대한 상환 기간을 개인의 대주 서비스와 동일하게 90일로 하되,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의 대주담보비율(현행 120%)도 기관과 외국인의 대차와 동일하게 105%로 낮춘다. 기존 개인투자자는 공매도 때 빌린 주식 금액 대비 보유해야 할 담보총액 비율을 120% 이상 유지해야 하지만 기관과 외국인은 105%를 적용받고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당정은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기관 투자자 내부 전산 시스템과 내부 통제 기준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유 의장은 "외부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완전히 차단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금감원과 거래소를 중심으로 구축 가능성과 대안 등을 추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과 기관·외국인 간 공매도 조건 일원화가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조장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보면 개인 투자자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시간 공매도 차단 시스템 구축 역시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재 정부와 금융당국이 주식 투자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희망고문'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장 공매도 금지에 환호하는 개인 투자자를 제외하고는 공매도 금지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공매도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할 경우 시장에 혼선을 주고 신뢰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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