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흔히 국민이나 주민의 대표를 뽑는 각종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4년마다 대선과 상원(3분의 1 의원) 및 하원 총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루고, 중간에 상원(3분의 1) 및 하원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루기 때문에 평균 2년마다 선거를 치룬다. 일본은 4년마다 중의원 총선과 3년마다 참의원(2분의 1) 총선, 그리고 4년마다 지방선거를 치루기 때문에 평균 1년 2개월마다 선거를 치룬다. 물론 일본은 의회제 정부형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총리가 중의회를 해산하면 조기 총선이 이루어진다. 한국은 5년마다 대선을 치루고, 4년마다 총선과 그 중간에 지방선거를 치루기 때문에 평균 1년 8개월 만에 한 번씩 선거를 치루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일상과 정상 궤도를 빨아드리는 선거를 자주 치룬다고는 볼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 집권세력이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대통령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정치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4년 연임 대통령제인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중간선거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음 대선에서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일본 총리도 참의원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음 중의원 총선에서 역전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대통령이 만회나 역전을 할 기회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집권세력이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의 상황에 처하거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해 시·도지사의 숫자가 적더라도, 대통령이 국정을 잘 펼쳐나가면 레임덕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원론적으로 볼 때, 5년 단임 대통령은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무관하게 대선공약과 소신에 따라 국정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시대적 업적과 국가적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총선이나 지방선거에 모든 것을 거는 듯한 국정 운영은 본말이 전도된 형국이 아닌가 본다. 물론 야권에서 대통령 탄핵을 시시때때로 거론하고, 또한 정부의 입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여소야대가 예상되는 국면에서 아무리 관용과 도량이 넓은 대통령도 선거에 대해 초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선거를 승리하기 위한 일환으로 인사 시스템과 정책을 활용한다면, 오히려 선거결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을 뿐더러 잔여 임기의 국정에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대체로 대통령 5년 임기 중 절반 이후에 치루는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근래에는 중간평가의 시점이 앞당겨지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선거에서는 대선과 달리 정치공학적 선거전략이 효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여야 갈릴 것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미진한 부분은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선거를 이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책이자 유일한 첩경이 아닌가 본다. 예를 들면, 정부 여당은 그동안 추진해 왔던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과 '지방시대'의 과제를 선거라는 이유로 미루지 말고 속도감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야당은 야당답게 민생회복과 정치개혁에 대한 대안을 정도에 맞게 제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은 한참 남았다. 여야는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금년 말까지 선거 분위기를 과열시키지 말고 내부에서 차분하게 준비하기 바란다. 물론 지역 정치권도 이에 호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정부는 절대로 선거에 관여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유권자가 지켜보고 있다. 분열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며, 정도를 걷는 자만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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