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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진 교수 |
식민 지배 또는 전쟁의 와중에서 불법으로 약탈된 문화재의 소유권에 대한 분쟁은 전혀 새롭거나 우리나라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영국박물관과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의 대표적인 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는 유물 가운데는 그 출처와 취득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1970년 불법 약탈 문화재의 거래와 소유권의 이전을 금지한 유네스코 협약의 제정과 각국의 승인이 이뤄지면서 지금의 세계적인 새로운 추세는 불법으로 약탈된 것으로 확인된 문화재의 경우 자발적으로 반환하거나 합법적으로 환수하는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을 아무 조건 없이 그리스에 반환하기로 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불법 도굴된 것으로 밝혀진 소장품을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 원래의 소유 국가로 반환했다.
1897년 나이지리아 베닌 왕국과의 전쟁에서 영국군이 불법적으로 약탈한 소중한 청동 유물은 전 세계 박물관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2021년 공립박물관이 소장한 모든 베닌 문화재의 무조건 반환을 약속했고, 영국 성공회교회, 캠브리지 대학,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도 자진 반환에 동참하면서 상당수의 유물이 이미 베닌 왕국의 후계자에게 환수됐다. 미국 국토안전부에 따르면 2007년 이후에만 2만여 점의 해외 불법 약탈 유물이 반환됐다고 한다. 불법 약탈 문화재의 정당한 원래 소유권 인정과 그에 따른 환수라는 세계적 추세를 완전히 거스른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래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대법원이 일본 민법의 법리를 적용해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근거를 적시한 것은 더욱 황당하다. 불법 약탈된 우리 문화재의 판결에 일본 민법을 적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왜구의 노략질과 같은 전쟁 범죄를 단순한 분실이나 도난처럼 가볍게 간주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치의 반인륜적 학살이나 약탈 행위에 대한 공소 시효가 만료되지 않는 것처럼 왜구의 약탈 행위가 시간이 지났다고 불법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헌법 정신과 법적 정의는 이러한 범죄 행위에 적절한 처분이 주어질 때 달성되는 것이고, 대법원이 지적한 '취득시효의 완성'이라는 일본의 법조문 하나로 합리화하거나 합법화할 일은 절대 아니다. 세계의 많은 박물관이 불법 문화재를 소유한 지 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원래 소유 국가에 반환하는 것은 대법원이 인용한 그 알량한 20년의 취득시효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법꾸라지’가 어딘가에서 찾아낸 엉터리 법조문보다 약탈 문화재의 정당한 처리에 대한 정의와 윤리를 더욱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의 부석사 불상에 대한 이번 판결은 우리 국민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판례의 수립이라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최고 법원이 내린 이번 판결은 불상의 불법 약탈이라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유사한 사례에 대한 선례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세기 이래 제국주의의 침탈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화재가 불법으로 약탈, 반출됐다. 21만여 점의 해외 소재 문화재 가운데 일본에만 9만5천여 점의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국외소재문화재단은 확인하고 있다. 약탈과 도굴 등 불법적으로 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할지라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적용된다면 소유 20년만 되면 취득시효가 완성돼 합법적 소유권이 인정될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법원의 판결이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판결이다.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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