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눈이오면 그렇게 들 기뻐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일까!
왜 눈이 오는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무슨 까닭일까! 지난 겨울부터 소설(小雪) 입춘(立春)이 다가오도록 내가 사는 동네는 다른 지역과 달리 눈이 내리지 않는다.
김광균 시인의 설야 (雪夜)란 시(詩)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겨울이 되어 하얀눈이 자주 내리는 것도 겨울 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이니 결코 탓할 일은 아니리라.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처마끝에 호롱불 여위여가며/서글픈 옛 자취인양 흰눈이 내려/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홀로 밤깊어 뜰에 나서면/ 머언곳 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이하 생략)
이 시에서 절정은 역시 <내 홀로 밤깊어 뜰에 나서보니, 눈 내리는 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여인이 옷벗는 소리와 같다>는 표현이다. 그 사각사각 눈내리는 발자국 소리를 여인이 옷벗는 소리와 같다고 표현한 이 시인의 감각도 로맨틱 하지만 그런 감각을 시로 옮겨 발표할수 있는 이 시인의 용기도 대단하다.
우리는 눈이 내리는 날 자기 자신이 낭만의 주인공이 되어 시처럼 내리는 눈을 멋있게 맞아줄 아름다운 시정(詩情)도 챙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날엔 대체로 보고 싶거나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게 우리네 보편적인 감정이다. 더구나 그 사람과 첫눈이 내리는 날에 어떤 약속으로 이루어진 추억이나 로맨스가 있다면, 그 뒤로도 첫 눈이 오는 날은 더 가슴이 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사람과 같이 살거나 함께 있지 않다면 첫눈이 올때 그 사람이 더 그립거나 더 만나고 싶은게 인간의 상정 이다.
항상 인기가 절정인 진성의 노래 <안동역에서>의 가사중 1절만 감상해 보자.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이었나/첫눈이 내리는날 안동역 앞에서/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안오는건지, 못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오지 않는 사람아/안타까운 내마음만 녹고 녹는다./기적 소리 짙어진 밤에…
이 노래의 가사에서도 두 사람은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 했지만 결국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밤늦게까지, 다시 말하면 그날 낮부터 시작해서 기적소리가 짙어지는 밤까지 기다림에 지쳐 이런 가사가 나왔고 그 가사로 가수는 열창, 이 노래에 그 날 주인공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기다림의 미학은 한쪽은 나오고 한쪽은 나오지 않는데 있다. 두 사람이 다 서로가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제 때 만나서 행복하게 웃고 맛있는 것 먹고 실컷 즐길 만큼 즐기다가 헤어졌다면 안타까울 일이 하나도 없고 이런 가사나 노래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문학작품이 대체로 그러 하지만 두 사람이 잘 만나서 아무 갈등도 헤어짐도 없이 잘 먹고 잘 살다 거의 같은 날 저 세상으로 잘 떠나 갔다면 그런 작품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안동역에서>의 가사처럼 한 사람은 기다리고, 한 사람은 나오지 않고, 그래서 그리움은 커지고 밤 늦게까지 기다림의 아픔에 울고 있을 때, 이런 가사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아닌가. 또 그런 가사가 우리네 심금을 울리면서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인 진성씨도 일약 유명 가수로 부각된 게 아닌가 싶다.
눈 내리는날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예가들이 즐겨쓰는 서산대사 (西山大師)의 다음 오언절구(五言節句) 시(詩)도 생각난다.
담설야중거 踏雪野中去/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길 걸어갈 때에 행여 아무렇게나 걷지말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후세인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시에서는 꼭 눈에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걸음 걸이를 조심하라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인생의 무슨 길(일)이나 그길 을 걸어갈 때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 뒤를 따르는 후배나 후학들이 선배의 전철을 본뜨게 되니 무슨 길보다는 오히려 무슨 일이든 바르고 참되게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다고 본다.
사람이 하는 일이 곧 그 사람이 살아가는 걸어온 길과 비유됨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해보다 지난 겨울에 우리 대전에는 눈이 내리지 않은 편이니 눈 오는 날의 낭만, 눈 오는 날 연인과의 만남, 그리고 눈길과 인생의 바른길 등을 잠시 마음 깊이 새겨 잠겨보게 하는 첫눈 내리는 날 아침이구나!
남계 조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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