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파로 프린스 호텔, 알프스 호텔, 갤러리 호텔, 홍인호텔은 사라졌고 리베라 호텔은 폐업했다. 유성온천 지구의 대명사인 유성호텔 역시 매각됐다. 100년이 넘은 호텔의 기구한 운명은 온천 지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형이 없어지면 기억이 소멸된다. 사람의 기억은 장소에서 복원되기 때문에, 집단의 기억이 유전되지 않는 곳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다." =
발간 즉시 화제를 불러 모은 [도시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저자 강대훈 / 출판 월간 토마토)의 P.61에 나오는 <온천특구에 온천지구가 사라졌다>는 대목이다. 반면 같은 온천 도시인 일본 벳부는 어떤가?
일본 규슈 동북 지역에 위치한 오이타(大分)현, 벳부(別府)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온천 관광지이다.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 혼슈의 아타미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온천인 벳부는 원천수가 2,848개소, 용출량은 1일 13만 6,571㎘로 일본 제일의 수량을 자랑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산과 도시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벳부의 상징이 된 지는 오래다. 벳부 온천은 크게 벳부, 묘반, 하마와키, 시바세키, 칸나와 칸가이지, 호리타, 가메가와 등 8개 온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나름의 개성을 갖추고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여기서 이틀 정도만 머물러도 모든 종류의 온천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일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잠시 대전에 오신 분을 만나 식사와 술을 나눴다. 대화 중에 온천에 화제가 집약되었다.
"홍 작가님도 일본은 자주 가보셨지요?" "아직 한 번도..." "제가 기회를 봐서 초대하겠습니다." 유성과 온양(현 아산시)은 쌍벽을 이루는 온천 도시다. 나는 과거 온양온천에서 호텔 매니저를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잘 아는데 당시 온양온천은 전국, 심지어 일본인들까지 대거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매주 토요일 정오만 지나면 온양 시내 호텔 방이 꽉 차서 멀리서 온 신혼부부조차 나에게 "제발 하룻밤 잘 방 좀 하나 주십시오!"라며 애걸복걸하기 일쑤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상식이겠지만 온천 도시와 같은 관광지는 관광객이 최소한 하루 이상은 머물러야 지역경제가 콸콸 잘 돌아간다. 그래야 저녁을 먹고 잠을 자며, 이튿날에는 해장국이라도 먹고 가기 때문이다. [도시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저자의 이유 있는 힐난이 이어진다.
유성온천이 오늘날 쇠락한 온천 도시가 된 것은 저자의 지적처럼 "유성온천 지구를 망친 것은 용적률과 고조 제한을 풀어준 것이 시작이다… 유성 최초로 용적률 980%를 돌파하기 전에는 유성 호텔 노천탕에서 몸을 담그고 고개를 들면 멀리 계룡산 쪽 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전체 경관을 잡아먹는 매머드 아파트 때문에 이제 보이는 것은 건물 벽뿐이다.(후략)"가 원인을 제공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더욱 번창하고 관광객들로 붐비는 걸 원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한국인이 대거 벳부온천으로 달려가서 돈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 신장에도 역행하는 퇴보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더라도 괜찮다. 이제부터라도 온천 도시 위기를 극복하고 유성온천의 제2의 중흥(中興)을 위한 방법과 벳부온천을 능가하는 비결을 관과 민이 고개를 맞대고 도출해 내야 한다.
홍경석/ 작가, 소설 <평행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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