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노무사 |
먼저, 개인이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과실 책임주의는 우리나라 민법의 대원칙일 뿐 아니라 시민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은 파업이 끝나고 나면 파업참가자들에게 수백억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하고 그것을 1/N씩 청구함으로써 사실상 노동조합 운동을 파괴해왔다. 예를 들어 시민 수 백명이 참가한 시위현장에서 일부 발생한 불법행위를 빌미로 불법행위자, 시위 주최자와 단순 참가자를 구별하지 않고 수백억의 손해배상액을 똑같이 1억씩 청구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상 집회와 시위 금지행위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이미 대법원에서도 쌍용자동차 불법파업 손해배상 판결에서 개별 조합원에 손해배상책임은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둘째, 지난해 8월 26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고용형태 공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0인 이상 기업의 파견·하청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약 17.9%에 달한다. 특히 조선업은 그 비율이 62.3% 달하고 건설업도 47.3%가 된다고 한다. 즉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10명 중의 6명이 하청 노동자이고, 건설업은 10명 중 5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이들 하청노동자는 사실상 임금 결정권을 가진 원청 사용자와 임금협상과 단체교섭을 하지 못하고, 아무런 권한 없는 하청 사용자와만 단체교섭을 하라는 것이다. 결국 불법 파업을 무릅쓰고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하게 되고, 협상이 타결되어도 원청 사용자는 수백억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하여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형국이다. 이 또한 대법원에서는 원청 사업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상의 사업주라 결정한 바 있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사실상 법률의 최종 해석권한이 있는 대법원에서의 해석에 맞추어 개정한 법률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총과 업종별 단체는'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극단적인 불법행위를 과도하게 보고하고 원청업체에 대한 쟁위행위를 정당화시켜 기업과 국가경제를 무너뜨리는 악법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법률 해석이 완료된 내용을 법률로써 명시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이 무리수를 써가며 거부권까지 행사해달라는 경총등 사용자 단체의 호소는 왜일까?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1/N으로 청구해도,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을 거부해도 결국 법원으로 가게 되면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사용자의 패소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소송 절차의 늪으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끌어들이고 나면, 기나긴 소송과 막대한 소송비용으로 이들이 하나둘씩 소송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에 맞선 77일간 파업이 가져온 상처는 너무나 가혹했다. 법원의 복직판결로 35명이 복직되었지만, 이미 100여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노조와 노조원들에게 100억원대의 손해배상금액이 청구되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포함한 33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등 많은 이들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비극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반성을 바탕으로 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비극에 대한 국회의 최소한의 책임인 "노란봉투법"마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훈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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