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거기 누구없소?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거기 누구없소?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KIT) 부소장

  • 승인 2023-11-16 17:18
  • 신문게재 2023-11-17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KIT_윤석주 부소장님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KIT) 부소장
늦은 밤 급히 현금이 필요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해외여행 중에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주위를 둘러보아 찾게 되는 것이 바로 ATM이다. 그런데 정작 ATM이 어떤 단어들의 약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말로 현금 자동 입출금기라 하는 이 ATM은 Automated Teller Machine이다. 여기서 teller는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 은행의 창구직원을 말한다. ATM의 출현은 1970년대의 가장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을 방문해야만 창구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던 시대에서 기계에 카드나 정보를 입력해서 쉽게 어디서나 현금을 찾을 수 있게 된 획기적인 자동화 및 무인 시스템이다. 참고로 우리나라가 인구당 가장 많은 ATM기를 보유한 나라라는 이야기도 있다.

과속 단속, 하이패스, 아이스크림, 커피, 엘리베이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뜻 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모두 무인시스템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 점점 사람이 사라져가는 가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권과 이용료를 주고받던 시절에서 하이패스로 쉽게 통과하는 시대가 되었고,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시대에서 자동판매기나 로봇이 커피를 내어주는 상황이 정착되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고 있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변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출장길에 간단한 점심을 위해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는데 자동주문 키오스크 앞에서 노부부가 곤혹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노부부는 주문을 하지 않고 매장을 나갔다. 내 차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필자는 평소에 나름 '얼리 어댑터'라는 소리도 듣고 각종 전자기기를 잘 다루는 편이었는데 업체마다 다른 방식의 키오스크 앞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찌어찌해서 주문을 무사히(?) 마치기는 했지만 자동화 방식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었다.

일상생활이 이런데 과학 분야는 어떨까? 최근 인공지능 열풍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챗지피티(Chat GPT, Conversational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살펴보자.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인 챗지피티는 간단한 질문부터, 작문, 정보검색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각종 포털에서도 이러한 인공지능형 문답 및 정보검색이 가능한 시스템을 속속 출시하고 있어 접근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실제로 대학 리포트나 번역, 작문 등에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어 창작 능력이 상실되고 고민 없이 쉽게 작성되는 과제물을 걸러내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비약된 이야기지만 창작 관련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처음에 챗지피티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명석함과 신속한 정보제공에 놀라고 격찬했다. 필자도 시험 삼아 여러 정보검색을 해보았는데 단순한 단답형부터 서술형 정보까지 자세히 제공하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검색을 거듭할수록 제공되는 정보에 의구심이 들어 두세 번 재확인한 적도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인가?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실수나 오류를 쉽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수십 초 전에 진지하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는데, 사용자가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하면 금세 다시 확인하고 잘못을 인정한다. 물론 데이터베이스의 한계성과 정보의 방대함으로 오류를 전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면 황당한 답변을 사실로 굳게 믿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있고, 손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풍요롭고 안락한 삶의 시대를 누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 자동화 시대가 빠르게 정착되어가는 상황에서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고 앞뒤로 가는 버튼만 있는 키오스크 앞에서 우리가 외치고 싶은 말은 '거기 누구없소?'가 아닐지.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KIT) 부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