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영 박사 |
우리 현대인들에게 욕망은 무엇일까? 삶의 긍정적 에너지일까? 아니면 공허한 푸념을 안기는 실체 없는 바람 같은 것일까?
그래서 욕망을 사람이 가진 최고의 힘이며 최악의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스탠리 쿠니츠’는 인간 삶의 원동력에 대해 '첫째도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라고 했는데, 욕망은 인간에게 양날의 검일 수 있다.
그 욕망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우리 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은 인간에게 욕구, 요구, 욕망이 있다고 보았다.
이 중 욕구에서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욕망이 발현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주체적인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라깡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결론지었다.
머리가 띵해진다. "내가 내 욕망대로 살아가는 데 왜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관찰해보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타자의 욕망'으로 가득한 것에 놀랄 수밖에 없다.
욕망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은연중에 부모가 원하는 학교와 진로, 직업을 갖도록 흐름을 만들어 종용한다.
그리고 다양한 쇼핑 앱으로 물건을 사거나 OTT(Over The Top)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욕망의 덩어리가 된 듯하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은 부모나 대기업, 정부의 정책과 무관하게 나 스스로에 의해 결정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시스템들이 은연중에 작동되어 자신의 무의식은 슬그머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낀다.
특히 정부나 대기업 등에서 만든 다양한 시스템과 콘텐츠들, 직장에 고용된 후 수행하는 다양한 업무들은 따지고 보면 대통령, 고위직 공무원, 전문가들, CEO 등이 만들어 놓은 타자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라깡은 어떤 무엇인가를 했을 때 자신의 욕망이 채워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환상'이라고 말한다.
‘장 보드리야르’도 욕망하는 세상을 보며 '토끼'를 '쥐'라고 이름 붙이면 쥐가 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거짓 현실에 노예가 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사라졌다. 많은 사람은 다양한 음식과 돈, 명예와 쾌락을 맛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허무의 공간을 지닌 채 살아갔을 것이다.
이 공간은 블랙홀 같아서 그 어떤 무엇을 가져다 가득가득 채워도 메꿔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욕망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그 무엇을 채우려 동분서주한다. 그렇지만 채울 수 없다. 결국 ‘팡세’가 말했던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함'에 빠지게 된다.
‘장 자크 루소’도 "욕망은 우리를 자꾸자꾸 끌고 간다.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간다. 우리의 불행은 거기에 있다"고 했는데, 라깡 역시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고 말하며 단지 계속 만들어지는 욕망의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는 욕망을 갈급하다가 '대타자의 욕망'으로 이동하게 될 뿐이다.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조상영 미술학 박사(미술작가·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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