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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DB |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물가를 통제해 고물가 잡기에 나서자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선택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사과 한 개가 5000원에 이르고, 옷·신발 값이 1992년 5월 이후 31년 5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8,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달아 3%대를 기록한 후 10월에는 3.8%로 좀처럼 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각 부처 차관에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부여하고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범부처 특별 물가 안정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배추·사과·달걀·쌀 등 농축산물 14개 품목, 햄버거·피자·치킨 등 외식 메뉴 5개 품목, 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9개 품목 등의 가격을 매일 확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원부자재 가격, 물류비, 제조경비 등을 고려하면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업들은 '가격 인상분'만큼 제품의 '중량' 줄이기에 나섰다. 농식품부가 지난달 20일 국내 식품회사 16곳을 불러 물가안정 협조를 당부한 이후 동원F&B의 '양반김' '동원참치라이트스탠다드' 등이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중량만 낮췄다. 해태제과가 지난 7월 '고향만두'와 '고향 김치만두' 용량을 줄였고, OB맥주도 4월부터 '카스 맥주' 묶음팩 제품용량만 캔당 기존 375㎖에서 370㎖로 5㎖씩 줄였다.
풀무원도 핫도그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한 봉당 개수를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인 바 있다. 롯데웰푸드(카스타드·꼬깔콘), 농심(오징어집·양파링)도 마찬가지다.
주부 이 모씨(41·대전 서구 둔산동)는 "최근 물가가 많이 올라서 비교적 가격이 낮은 제품을 발견해 기본이 좋았는데 중량이 다른 것을 알고 실망했다"면서 "용량을 줄일 대 아무런 안내를 하지 않으니까 장을 보는 게 쉽지 않다. 속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식당도 가격 상승으로 손님이 줄 수 있어 양을 줄이거나, 밑반찬 가짓수는 물론 각종 서비스도 축소하고 있다.
당장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이 찾지 않을 것을 우려해 원재료량을 줄이거나 종류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식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가 뛴 반찬을 아예 구성에서 빼버리거나 손님에게 리필해 주지 않고 있다. 일부 식당에선 국내산 대신 중국산 김치로 갈아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성 봉명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당장 채소 값 인상부터 안 오르는 게 없다. 메뉴 가격을 상향해 판매해야 하지만, 손님 불만이 클까봐 조심스럽다"면서도 "차선책으로 반찬을 바꾼다거나, 줄이는 등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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