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닳아 없어진 세월을 자꾸만 쓸고 있다
고려와 조선 왕조의 뿌리를 지켰던
두 충신의 얼이 깃들어 있는 은행나무도
무명옷인 듯 정갈한 고택에 기대어
기울어져 가는 행단을 지켜내고 있다
얼어붙은 문풍지 사이로
시린 달빛이 들었던 자리엔
깃털처럼 가벼운 청빈한 살림이 엿보이고
처마 끝에선 육백여 년의 묵은 시간이
양철바지에 떨어지고 있다
그렇게 고택은 앙상한 겨울을 나며
언제나처럼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간다
이은숙/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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