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수도 타슈켄트에 이어 오늘날 두 번째 규모의 도시인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평가를 받았다. 동에서 서로,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대상들이 피로한 여정을 잠시 멈추고 쉬어가야만 하는 곳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때문에, 이곳에 모인 다양한 국가의 상인들이 상호 간에 정보를 교류하고 상품들을 거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가치는 해당 지역에 역사적으로 불행을 가져왔다. 당대에 강대국들은 실크로드의 허브인 우즈베키스탄 지역을 침략하고 지배함으로써 해당 지역이 가지는 기능을 직접 보유하고자 했다.
고대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중세의 칭기즈칸, 근대의 러시아제국 등을 필두로 하여 동서양의 동시대 강대국들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향해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를 시도하였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러한 아픔을 고찰하자면 1950년 김일성과 스탈린 - 모택동의 협작(挾作)으로 발생한 6.25 전쟁으로 피해가 막심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우즈베키스탄은 3천 6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와 함께 국토는 우리 남한 면적의 4배일 정도로 크다고 한다.
그런데 2개 나라를 지나야만 비로소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지정학적(地政學的) 불리함이라 하겠다. 존경하는 김우영 교수님이 지난 9월에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셨다. 우즈베키스탄 대학생들에게 우리 한국어와 문화까지 보급하고 더불어 '애국 활동'을 하기 위함에서의 출국이었다.
어제 김우영 교수와 카톡으로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머나먼 이국땅이었으므로 불현듯 외롭다고 하셨다. 아울러 막걸리도 마시고 싶고, 김과 미역도 먹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셨다.
11월 5일 자 <충남도정신문>에 서창수 순천향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칼럼 [충남과 우즈베키스탄]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을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 한국 대학에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오는 나라, 현지 길거리에서 한국인만 보면 접근하여 서툰 한국어로 들이대는 사람들, 택시 타면 한국 사람이라고 택시비 안 받으려는 나라'가 바로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라고 했다.
아울러 최근 우리나라 김과 미역, 다시마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자신이 한국에 갔다 다시 돌아올 때는 이러한 우리의 해산물을 사다 달라는 부탁이 부쩍 늘었다며 감격했다. 순간, 김우영 교수님이 그리워서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길흉과 심지어 인생까지 달라진다. 김우영 교수님을 최초로 만난 건 내가 대전자원봉사센터 시민기자단 단장의 자격으로 그 해의 '봉사왕'에 선정된 김우영 교수님을 인터뷰하면서다.
인터뷰를 마쳤더니 "술 한 잔 하자"며 내 손을 잡으셨다. 그 손이 난로처럼 참 따스했다. 그로부터 인연을 맺고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 나는 올 3월과 9월에 두 번이나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다 김우영 형님 덕분이었다.
생애 첫 장편소설인 <평행선> 발간 역시 김우영 형님이 안 계셨더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내가 울적할 적이면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귀신같이 아시곤 전화하여 "오늘은 낮술이라도 할까?"라며 우리의 아지트인 중앙시장 먹자골목 단골식당으로 불러내곤 하셨던 김우영 형님, 아니 김우영 교수님이 보고 싶다.
생각 같아선 김과 미역, 다시마 외에도 평소 형님이 좋아하시는 막걸리까지 잔뜩 담아 해외 택배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홍경석/ 작가, 소설 <평행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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