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민선 8기 대전시정의 전개는 반사이익 구조에 의한 증오와 보복 정치의 적나라한 적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년 6월 치러진 제8대 지방선거는 정책경쟁이 실종되고 시종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깎아내리기로 일관하면서 반사이익 구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120여만 대전시 전체 유권자 중 51%가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 개표 결과 전체 투표자의 51.2%인 31만 표를 획득한 이장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체 대전시 유권자 4분의 1의 지지만으로 당선자가 권력을 잡은 셈이다. 낙선 후보에게 투표한 49%의 시민과 기권한 51%의 전체 유권자를 고려한다면, 당선자는 기존 정책을 손보는데 신중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장우 시장은 충분한 공론과 검토 과정 없이 자신만의 이념적 잣대로 대전시가 키워온 대표적인 제도와 정책을 재단하고 폐기하면서 적나라한 보복 정치 수순을 밟아왔다.
주민참여예산제가 대표적이다. 2014년 '지방재정법'에 의해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의무화된 주민참여예산제는 전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앞다투어 강화해나가는 제도다. '지방재정법' 제정 이전인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박성효 대전시장이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도입한 제도이기도 하다. 또한 민선 7기 말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최우수 광역자치단체로 선정되면서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짙은 이념적 색안경을 낀 이장우 시장의 눈에 주민참여예산제는 진보시민단체를 위한 '그들'의 제도로 분류된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이미 배정된 예산액을 반으로 삭감한 것을 시작으로 대전시 주민참여예산제는 200억에서 50억 규모의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주민참여예산제를 가장 잘 운영하는 광역자치단체는 보수의 텃밭인 대구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대구시장은 긴축균형 예산을 강조하면서도 170억의 주민참여예산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동 단위 주민참여예산제를 폐지한 대전시와는 달리 대구시는 40억 원의 예산을 여전히 읍면동 참여형 사업으로 배정하고 있다. 대구시의 높은 제도적 성과의 동력으로 중간지원조직인 '대구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현장 지원이 꼽힌다. 센터는 주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읍면동의 의제 발굴을 지원하면서 마을자치 플랫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대전에도 대구시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시민 공동체 활동의 전문 지원기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온 '대전시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있다. 최근 대전시는 뚜렷한 이유 없이 올해 말 10년 역사의 사회적자본지원센터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역공동체 역량 강화와 참여를 통한 사회문제 대응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핵심 글로벌 의제가 되고 있다. 마을공동체 지원정책을 강화하지는 못할망정 오랜 세월 대전시가 쌓아 올린 지역공동체 활성화의 제도적 자산을 대전시 스스로 파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다. 보수 상징인 대구의 자랑으로 뿌리내린 제도들이 왜 대전에서는 색깔론으로 매도되고 폐기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반사이익 구조와 보복 정치의의 덫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에 입각한 대전시장의 성숙하고 균형감 있는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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